[시론/짐 데이터]‘한국 미래예측’ 국회가 나서야 하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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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데이터 미국 하와이대 교수
짐 데이터 미국 하와이대 교수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체제의 후발국가로서 매우 성공적인 발전을 이룩해왔다. 하지만 최근 한국을 방문하면 양극화와 정치적 갈등이 점차 깊어지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을 피부로 느낀다. 이제부터 대한민국은 국가 비전을 어떻게 재정립하고 어떤 미래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지금 한국인들이 예측하는 바람직한 미래와 국가적 비전이 10년, 20년 뒤 세상에서 얼마나 유효할까. 나는 다소 부정적이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환경에서 단발성의 미래예측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는 없다. 게다가 한국 정치는 제왕적 권한을 지닌 대통령이 5년마다 바뀐다. 정치권력의 부침에 따라 미래예측의 방향성도 영향을 받기 쉬운 구조다.

한국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이려면 우선 미래예측의 연속성과 중립성을 제도적으로 담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어느 정당이 다수가 되든지 일관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범국가적인 미래예측 기관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미래예측은 잠시 스쳐가는 유행으로 간주되거나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 미래예측은 21세기 국가 경영에 필수적인 역량이다. 혹자는 범국가적인 미래예측을 민간 싱크탱크에 맡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민간 조직이 눈앞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미래 연구의 연속성과 중립성을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장기적 미래예측은 단기적 이해관계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이 확고하게 제도화되지 않으면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일부 선진국은 행정부 입법부 같은 정부 조직 안에 나름대로 전문성과 중립성을 갖춘 미래예측 기관들을 운영해오고 있다. 핀란드는 1999년 헌법 개정과 연계해 의회에 미래위원회를 설립했다. 싱가포르 또한 오래전부터 시나리오 기법을 국정 전략에 활용해왔고 2007년 이후로는 총리실 산하에 ‘미래위험평가분석(RAHS)’이라는 미래지향적 프로세스를 활용하고 있다. 스웨덴 뉴질랜드 호주 영국도 유사한 형태의 미래예측 기관을 운영 중이다.

한국이 기존 정부조직 산하에 미래예측을 전담하는 조직을 만든다면 어떤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앞서 언급한 외국의 사례를 보면 행정부보다는 입법부에서 중장기 미래 연구를 주도하는 편이 더 효율적일 듯하다. 미래예측 기관이 행정부 산하에 설치되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조직의 리더가 바뀌면서 연구의 연속성이 끊기고 연구역량이 사라지는 경향이 종종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한국 국회의 독자적인 미래예측 연구기관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은 매우 흥미롭고 반가운 소식이다. 가장 미래지향적인 국가로 평가되는 핀란드 의회의 미래위원회는 정부와 의회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미래 사안에 관해 정치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독특한 장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 국회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 민주적이고 중립적인 미래예측과 전략을 보장하는 기구를 만든다면 이는 세계 입법부 역사에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서 다른 국가들이 부러워할 미래 모델을 만들고 국제사회를 선도해 나갈 때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원하는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국가가 바람직한 미래를 창조하려 해도 스스로 원하는 미래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면, 또는 정부가 추구하는 미래 비전이 몇 년마다 크게 달라진다면 사회는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한국 국회가 자체 미래연구 조직을 설립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되찾는 데 매우 합리적인 투자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내게도 알려주기 바란다.

짐 데이터 미국 하와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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