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이인길/한국은 몇시인가?

  • 입력 1999년 12월 15일 19시 42분


요즘은 정말이지 세상을 쳐다보기가 두렵다. 매일 자고나면 깜짝깜짝 놀랄 일들이 생기고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작태가 너무 한심하고 개탄스러워 여기가 우리나라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통치자들은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 자랑하며 새 천년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을 앞다퉈 내놓고 있지만 하루하루가 짜증스러운 국민에겐 지겹고 공허하기 짝이 없다.

지금 한국사회의 격동적인 소용돌이를 보면 구시대의 총결산은커녕 혼란과 무질서가 사회 구석구석을 유린하는 우리들의 피폐한 자화상을 보는 것만 같다. 법과 상식, 질서와 권위가 붕괴하고 독선과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횡행하면서 공동가치와 도덕기준이 실종된 아노미적 혼돈상태 바로 그것이다.

듣기만 해도 지긋지긋하고 신물이 나는 이른바 옷로비 의혹만해도 그렇다. 제대로 굴러가는 국가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럴 수는 없다.

이 사건의 실체는 간단 명료하다. 고급 옷가게에서 검찰총장 부인이 구입한 2400만원짜리 밍크코트의 옷값을 재벌부인에게 대신 내도록 요구했고 옷로비는 실패했다는 것이 줄거리다.

이것을 하나 규명하지 못해 온나라가 난리를 치며 1년을 질질 끌었다. 대통령 직속의 청와대 사직동팀이 나서고, 검찰이 나서고, 그 다음에 국회 청문회가 열리고, 이것으로도 모자라 다시 특별검사가 발족하고 그리고 현재 대검찰청에서 또 한번의 수사가 진행중에 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나. 어찌된 셈인지 조사를 하면 할수록 거짓말이 난무하고 의혹이 더 커지는지, 그러고도 사법집행을 책임진 국가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국민을 우습게 여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런 기괴한 일이 생겨날 수가 있는가.

경악과 분노와 개탄의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은 욕질하고 허망한 웃음 외에 날릴 게 무엇이 있겠는가. 민주노총의 오만불손한 언동과 저질 국회의원의 시대착오적인 행태도 그 비극적인 원류은 바로 이런 데에 있다.

눈앞의 현실이 이렇다면 미래의 일은 보나마나다. 미래랄 것도 없다. 코앞에 닥친 월드컵행사도 준비내용을 들여다 보면 식은 땀이 흐른다.

경기장 건설도 그렇고 숙박 교통 음식 안전 질서 친절 어느 것 하나 믿고 안심할 만한 데가 없다.

10개도시에 건설중인 경기장도 한둘을 빼곤 공정이 순탄치 않다. 시공업체의 부도와 잦은 설계변경 재원조달 차질로 개막전에 완공할지도 지금으로선 불안하다. 경기 개시 1년 훨씬 전인 2001년 5월에 모든 경기장 시설을 완공하고 깜짝 놀랄 첨단 장비개발에 열중하고 있는 일본과는 완전 딴판이다.

우리만 한다면 별문제다. 30만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만 구경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을 왔다 갔다 하게 되어 있어 금방 비교가 된다.

두나라의 국가 경쟁력은 아마도 화장실 청결도에서 첫번째 승부가 날 것이다. 호텔급의 공중화장실과 낙제점의 화장실이 노출되면 국가이미지 마케팅 승부는 이미 난 것이나 다름없고 그 결과는 국가적인 망신살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개선점을 모색하는 정치지도자를 아직 보지 못했다.

국가지도자나 국가기관이 국민적 상식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일어나는 가치혼란적인 비대칭의 현실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적 죄인에 해당하는 전직대통령들이 죄값에 대한 자숙은 고사하고 큰소리를 치는 그 뻔뻔스러움과 10년전 역사의 관(棺)속에 들어갔던 서경원사건이 밖으로 나와 ‘게임의 룰’이 뒤죽박죽되는 가치의 전도 현상도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하긴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은 과연 몇시인가.

이인길<부국장서리 겸 사회부장> kung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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