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권효]“자치단체장은 왜 끌어들입니까”

  • 입력 2004년 10월 14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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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수도 문제는 놔두고 공공기관만 유치하겠다는 것은 염치없는 게 아니냐. 지방분권을 위해 법까지 만들어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시장의 입장은 무엇인가.”(열린우리당 의원)

“정부 여당이 행정수도 이전을 위해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라는 유인책을 내놓고 광역단체장들이 이전에 반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은 기업 유치를 더 어렵게 만들텐데….”(한나라당 의원)

12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의 대구시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조해녕(曺海寧) 대구시장에게 겉으로는 ‘의견을 묻는다’며 사실상 입맛에 맞는 대답을 강요했다.

전날 열린 경북도에 대한 국감 때도 마찬가지였다. 의원들은 이의근(李義根) 경북도지사에게서 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 답변을 이끌어 내려 안달했다.

의원들의 의도와는 달리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는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득실이 무엇인지 자치단체 차원에서 검토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답변했다.

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이미 결론을 정해 놓은 채 감사를 하는 쪽이 피감기관장에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은 횡포에 가깝다. “어느 쪽에 줄을 서겠느냐”고 협박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국감이 끝난 뒤 대구시와 경북도 안팎에서는 볼멘소리가 적잖이 나왔다. 국회에서 해결하지도 못하는 사안을 자치단체장을 끌어들여 ‘우리 편 만들기’에 애쓰는 모습이 볼썽사납다는 반응이었다.

경북도의 한 간부는 “행정수도 이전은 중요한 국책사업이므로 자치단체로서도 민감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단체장을 윽박질러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지방분권국민운동 관계자는 “행정수도 이전은 본질적으로 지방분권화 문제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며 “국회의원들이 지방자치단체장의 찬성이나 반대 의견을 정략에 이용하려는 발상 자체가 반(反) 지방분권적 구태”라고 말했다.

이권효 사회부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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