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리포트]전문가진단/인기영합 극복하려면

  • 입력 2000년 12월 21일 18시 38분


▼ 최도성 서울대 교수 ▼

정부가 인기 위주 정책에 연연하는 것은 ‘신뢰할 만한 리더십’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통이 뒤따르는 구조조정 과정을 국민이 참고 견디기 위해서는 지도자를 믿고 따를 뿐만 아니라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결과적으로 이롭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

최도성 서울대 교수(경영학·증권학회장)는 “정치 지도자들이 당장 다음 선거에서 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를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을 집행하는 관료들도 원칙에 어긋나는 포퓰리즘 정책에 대해서는 자리를 걸고 막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영호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대통령이 선거에서 이기면 ‘선거 공약을 다 잊어야 한다’는 말을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 논리가 정치적인 문제로 얽매이면 구조조정은 물 건너간다는 것. 고통스러운 정책들이 나오고 이를 국민에게 호소할 수 있어야 나라에 보약(補藥)이 된다는 것이다.

예종석 한양대교수(경영학)는 “대통령이 너무 여론 눈치만 보지 말고, 또 정권 재창출에 연연하지 말고 대국적으로 정국을 운영해야 난국을 돌파할 수 있다”고 주문했다. 최운열 한국증권연구원장(서강대교수)도 “정부가 원칙을 갖고 문제를 해결해야지 이해 집단의 목소리가 크다고 다 들어주면 안된다”고 꼬집었다.

구재상 미래에셋투신 대표는 “원칙이 불분명하니까 모든 경제 주체들이 들고 나오고 있다”며 “리더십을 갖고 원칙대로 처리해야 난국을 돌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병훈 숭실대교수(정치학)는 “언론과 지식인 사회는 정부가 포퓰리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밀착 감시해야 하고 고통없이 미래가 없다는 인식을 널리 심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김태기 단국대교수 ▼

노사문제 전문가들은 ‘노동정책의 탈(脫)정치화’와 ‘노동 부문 개혁 철학 수립’을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이철수(李哲洙·노동법)이화여대교수는 “정치적 고려에 따라 비전문가를 노동정책 책임자로 기용함으로써 현정부 들어 노동 부문이 늘 정책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부가 노사정위에 모든 것을 떠넘기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한 노동 전문가는 “각종 노사 쟁점에 대한 정부의 자기 목소리가 없다”면서 “노사 양측의 눈치만 보지 말고 설득할 것은 설득하고 추진할 것은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기(金兌基·경제학)단국대교수는 “인력 감축 없이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다 파업 위기가 닥치면 노조측에 대가를 지불하고 무마하려는 태도를 벗어나야 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국정 4대 개혁 과제의 하나인 노동 부문 개혁의 실체가 없다며 21세기 노사 관계의 틀을 바꾸는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최영기(崔榮起·사진)한국노동연구원부원장은 “입으로만 화해와 협력 위주의 노사관계를 외칠 게 아니라 기업 지배구조 및 사외이사 제도 개선, 독일식 노동이사제와 같은종업원의 이사회 참여 또는 이사 추천제 도입등을 통해 근로자가 경영에 책임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윤우현(尹于鉉)민주노총정책1국장은 “정치권 관료 경영주의 부패와 경영 부실 등을 먼저 수술한 뒤 노동자들의 고통 분담을 요구해야 정부의 노동정책이 설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 '김재익 신화'를 배워라 ▼

고려대 정책대학원이 올해 5월 처음 만든 ‘제1회 정책인 대상(大賞)’ 경제부문 수상자는 이미 17년 전 고인이 된 김재익(金在益) 전 경제수석이었다.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사건으로 순직한 그가 한국경제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서였다.

그가 경제수석으로 일한 80년대초의 전두환(全斗煥)정부는 정치적 정당성이 극히 낮았다. 그러나 최소한 경제측면에서만은 나름대로 공로도 인정받고 있다. 이런 평가는 상당부분 김 전 수석의 덕분이다.

그는 박정희(朴正熙)개발독재와 관치경제 유산이 아직 짙게 깔려 있던 80년대초 줄기차게 ‘안정 자율 개방’을 내걸고 우리 경제체질을 바꿔나갔다. 성장지상주의와 관 주도 사고가 팽배하던 당시 그는 ‘이단아’로 여겨졌고 저항도 많았다.

그러나 대통령을 설득해 성장위주 정책 대신 안정화 정책을 펴나가게 했다. 특히 그를 비롯해 정보화시대의 흐름을 미리 읽었던 일부 관료와 민간전문가 그룹이 소신을 갖고 추진한 전자 및 정보통신혁명은 우리 경제정책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김재익 신화’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뚜렷한 원칙과 책임감, 전망을 가진 경제관료를 지도자가 믿고 뒷받침할 때 어떤 시너지효과가 나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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