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매거진]푸에르토리코 특별국제재판 참가기

  • 입력 2000년 12월 18일 15시 53분


▼푸에르토리코 찾아가기▼

세계 지도를 펴놓고 먼저 한반도를 찾아본다. 그리고 일본을 지나 태평양을 가로질러 아메리카로 떠나본다.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잇는 허리처럼 잘록한 부분을 찾는다.

태평양과 대서양이 통하는 실처럼 가는 길이 있다. 그곳에서 북미와 남미사이의 대서양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수백 개의 섬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것이 보인다. 그 수백개의 섬중에 '푸에르토리코'가 나타난다. 옆에는 괄호속에 이렇게 쓰여 있을 것이다. USA또는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공항에 도착하자 후끈한 열기가 올라왔다. 워싱턴을 떠날때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옷을 꽁꽁 싸고 오느라 푸에르토리코가 연중 여름이라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7시, 참가단을 가득 실은 버스가 푸에르토리코 선착장으로 향했다. 선착장에 도착해서 식사를 하려고 식당을 찾는데 멀리서 이스마엘(7월 전민특위 1차 국제조사단으로 한국방문,미 해군기지 폭격연습장인 비에케스 투쟁의 지도자)가 걸어온다.

비에케스라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점퍼 차림에 배낭을 멘 그의 모습은 한국에서나, 워싱턴에서나 변함없이 순박한 시골 아저씨를 연상시킨다.

그와 인사를 나누는데 또 한사람의 익숙한 얼굴이 다가온다. 베르타(7월 전민특위 1차 조사단으로 한국 방문, 국제행동센터 필라델피아 지부장)다.이렇게 모이고 보니 푸에르토리코가,비에케스가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비에케스 섬까지는 배를 타고 1시간 정도 가야한다.

▼비에케스,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특별국제재판이 열린 장소는 옛 스페인 총독 관저가 있는 곳으로 지금은 박물관과 회당으로 쓰이고 있는 곳이었다.

사방으로 비에케스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작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었는데,주변의 장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바다와 하늘과 구름이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주는 것임을 보여주는 푸르른 일체감. 그러한 자연을 무대로 감히 전쟁연습

을 하고 있는 미국의 오망에 분노가 치밀었다.

지난 100여년의 식민지 해방투쟁의 압살을 비롯하여 지난 50여년 동안에는 비에케스 섬을 자신들의 전쟁 연습장으로 사용했던 미국을 피고석에 세우는 특별국제재판은 11월 16일부터 21일까지 5일동안 진행되었다.

재판은 17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되었고 21일 기자회견으로 마무리되었다.

무대가 되는 중앙의 안쪽에 푸에르토리코기와 비에케스기가 각각 달렸다. 1인의 최고재판관과 6명의 명예재판관이 앞쪽 중앙에 자리했고 4명의 민중변호사들이 한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푸에르토리코 민중들의 주요 언어가 스페인어이기 때문에 스페인어와 영어가 동시통역되었다. 스페인, 캐나다, 하와이, 일본,미국 등 7~8개 국가에서 80여명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특히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다름아닌 푸에르토리코의 장기수 분들이었다. 25년을 복역한 푸에르토리코의 최장기수 로리타를 비롯하여 19년 6개월을 복역한 장기수 6명의 죄목은 미국에 대한 반란죄였다.

푸에르토리코의 민족해방투쟁이 어쩌면 우리의 그것과 이렇게도 닮았을까.오랜식민지 투쟁을 끝내자 해방자로 들어온 미국,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살상과 투옥, 미군범죄, 미군폭격 연습장, 장기수분들, 그리고 현재도 계속되는 투쟁까지….

한국(조선) 전쟁에 푸에르토리코는 미군에 소속되어 가장 많은 군대를 파병했다. 당연하게도 이들의 최전선의 총알받이로 나서야 했고 식민지 종국을 위해 전쟁에 나섰던 많은 이들이 돌아오지 못했다. 우연히도 재판에서 통역을 맡은 분도 한국(조선) 전쟁의 참전 군인이었다.

그는 전쟁에 참전했던 이유를 한마디로 말했다. '무지(ignorance)'. 미국이 전세계를 상대로 어떤 만행을 저지르는지 잘 몰랐다는 이야기다.

식민지이기에 아름다운 자연이 서럽듯 비에케스 사람들의 생활속에 묻어나는 가난에 가슴이 아려왔다. 물가는 미국 본토의 3~4배로 가히 살인적이고 제대로 된 집도 찾아보기 힘들다.

식민지적 상황이 푸에르토리코 민중들의 삶 곳곳에 파고들어 있는 것이다.

식민지 굴레를 끊어내는 날, 종속으로부터 해방되는 날, 푸에르토리코의 수도, 산후안 거리를 가득 메운 새로운 조국 건설로 활기에 가득찬 젊은이들을 상상해본다.

이스마엘과 같은 겸손한 민중의 지도자가, 여전히 꺾이지 않는 투쟁의 기개를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는 장기수 선생님들이,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쉼없이 투쟁하는 분들이,든든한 뿌리가 되고있는 푸에르토리코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김혜숙(전민특위 공동사무국 사무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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