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IT섹션]"우린, GPS 들고 보물 찾으러 간다"

입력 2000-10-29 17:13수정 2009-09-2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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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는 10월초 뉴욕주 더체스 카운티의 한 숲속. 낡은 시보레 자동차에서 내린 한 남자가 무언가를 찾듯 두리번거렸다. 적당한 장소를 찾았는지 페인트 통을 땅속에 묻고는 주머니에서 날렵하게 생긴 물건을 꺼냈다. 위치확인시스템(GPS) 수신기였다. 수신기 화면에 나타난 위치를 확인한 이 남자는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 사이트에 그 위치를 올려놓았다.

첩보영화의 주인공이 아닐까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남자의 이름은 로버트 캐싱이노. 뉴욕주 메리스트대에 다니는 대학생이다. 자칭 ‘컴퓨터광(Geek)’이라고 하는 캐싱이노가 이날 한 일은 ‘첩보’나 ‘스파이’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바로 지오캐싱(Geocaching). GPS를 이용한 일종의 보물찾기 놀이다. 캐싱이노는 이날 지오캐싱에서 보물을 숨기는 역할을 맡았다.

그동안 군사용 위치확인시스템으로 이용되어온 GPS가 민간에 개방되면서 컴퓨터광을 중심으로 지오캐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GPS가 개방된 5월 이후 컴퓨터광들이 숨겨놓은 보물은 모두 120개가 넘는다. 장소도 미국에 한정되지 않고 칠레와 호주 등에 걸쳐있어서 그야말로 ‘전지구적 보물찾기 놀이’가 벌어지고 있다.

컴퓨터광들은 자신이 숨겨놓은 보물의 위치를 지오캐싱닷컴(www.geocaching.com)과 같은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놓고 누군가 찾아가기를 기다린다. 보물을 찾은 사람은 찾았다는 사실과 함께 자신이 숨겨놓은 보물의 위치를 다시 사이트에 올린다. 넓고 넓은 세상에서 좌표 하나만으로 보물의 위치를 정확히 찾을 수 있는 것은 물론 GPS 덕분이다.

지오캐싱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역시 컴퓨터광인 데이브 얼머. 클린턴 대통령이 GPS를 민간에 개방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어떻게 하면 돈벌이가 될까 고민했던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얼머는 게임을 먼저 생각해냈다. 게임에 규칙이 있다면 단 하나. ‘보물을 찾았으면 반드시 다른 보물을 남겨두라.’ 보물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니다. 간단한 캠핑용 도구, 컴퓨터 디스켓, 통조림, 새총 등 저렴한 물건이 대부분이다.

지오캐싱의 팬들은 이 놀이가 단순히 GPS 수신기 화면에 나타난 화살표를 쫓아가 보물을 찾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입을 모은다.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수 있고 보물을 찾기까지 험난한 산행을 해야하는 등 운동효과가 대단하다는 것.

“모니터 앞에만 앉아서 세상 모든 일을 해낼 수는 없잖아요.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훌륭한 레크리에이션이죠.” 누군가가 숨겨놓은 ‘쓰레기’를 찾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며 조롱섞인 비난을 하는 다른 컴퓨터광들에게 보내는 캐싱이노의 항변이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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