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한국기업 세계를 품다]<15> 멕시코 오지에 물탱크 지원하는 LG전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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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긷는데 4시간… 마당 물탱크서 생명수 쏟아지자 “틀라조카마테”

(위) 믹스틀라데알타미라노의 원주민 초등학생들이 LG전자의 후원으로 지은 학교 물탱크 앞에서 깃발을 흔들며 LG전자 일행을 환영하고 있다. (아래) 현지 학생들이 물탱크가 설치된 뒤 바뀐 삶을 그린 대형 그림을 LG전자와 평화재단 일행에게 보여주고 있다. LG전자 제공
(위) 믹스틀라데알타미라노의 원주민 초등학생들이 LG전자의 후원으로 지은 학교 물탱크 앞에서 깃발을 흔들며 LG전자 일행을 환영하고 있다. (아래) 현지 학생들이 물탱크가 설치된 뒤 바뀐 삶을 그린 대형 그림을 LG전자와 평화재단 일행에게 보여주고 있다. LG전자 제공
믹스틀라데알타미라노는 멕시코 베라크루스 주의 조그마한 산골 마을이다. 이곳 원주민인 주부 루피나 초피야크틀 씨(21)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물을 긷기 위해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났다. 2세, 9개월 된 아이 둘을 업고 안은 채 산길을 따라 두 시간을 내려와 20L들이 통에 실개천 물을 담고 다시 두 시간을 올라 집으로 돌아가는 중노동을 해야 했다. 이 물로 가족 네 명이 하루를 버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식수로 쓰고 남은 걸로 겨우 세수를 할 정도다. 빨래나 샤워는 엄두도 못 냈다.

하지만 초피야크틀 씨는 이제 지긋지긋한 ‘물 긷기 대장정’을 할 필요가 없다. LG전자와 ‘평화재단(Fondo para la Paz)’의 도움으로 집 마당에 물탱크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생명의 물이 된 LG전자

지난달 12일 멕시코시티에서 자동차를 타고 동쪽으로 4시간을 달려 베라크루스 주 오리사바 시에서 하룻밤을 머문 뒤 다음 날 아침 목적지인 믹스틀라로 향했다.

해진 옷차림의 주민들은 당나귀를 타고 다닌다. 집은 나무 위에 슬레이트만 겨우 얹어 폭풍우라도 치면 금세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주민 대부분은 하루 1달러(약 1140원) 미만으로 생활하는 절대 빈곤층이다. 여기서 영세 농업을 하거나 가까운 도시에 나가 막노동, 잡일을 하는 게 벌이다.

초피야크틀 씨와 루이스 레이 씨(22) 부부의 집에 가니 커다란 물탱크가 눈에 띄었다. 지붕 위에 빗물을 받을 수 있는 수관(水管)을 얹어 빗물이 물탱크로 모여들게 한 것이다. 선명하게 페인트칠한 LG와 평화재단의 로고 사이에 ‘Tlazokamate miak(틀라조카마테 미아크)’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곳 원주민 언어인 나우아틀어로 ‘매우 감사합니다’란 뜻이다.

전기도 지난해에야 들어왔다. 아직은 TV도 없이 겨우 백열등 정도만 켜는 집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주민들은 LG전자가 어떤 회사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LG전자는 생명과도 같은 ‘물’을 뜻한다. LG전자의 후원으로 올봄 이 마을 사람들은 물탱크 28개를 지었다. 맵시 있는 외관은 아니지만 저장용량이 넉넉해 건기에도 버틸 수 있다. 초피야크틀 씨는 “아이들을 씻길 수 있고, 애들 옷도 매일 빨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웃 주부인 로살린다 로살레스 아카후아 씨(41)는 아이들이 잠든 한밤중에 집을 나서 꼬박 밤을 새우며 물을 길어 오곤 했지만 이젠 가족과 함께 잠자리에 들 수 있다. 그는 “예전에도 정치인들이 ‘물을 공급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말뿐이었다”며 “약속을 지킨 것은 LG가 처음이다.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드럼세탁기로 빨래 서비스도

멕시코는 심각한 물 부족 국가다. 지난 50년 사이 인구가 4배로 늘어났지만 녹지는 계속 줄어들어 물이 귀해졌다. 2010년부터 가뭄이 계속돼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멕시코 국민의 8%는 아예 상수도가 없으며 인구의 40%인 빈곤층은 충분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수도 멕시코시티는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외국인 주재원 등 이 도시의 가장 상류층이 사는 지역도 툭하면 단수가 될 정도로 물 사정은 열악하다.

멕시코에서 드럼세탁기 영업을 하는 LG전자 멕시코법인은 물이 부족한 이들에게 ‘물’로 다가가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드럼세탁기를 이용하면 LG와 함께 물을 절약한다’는 캠페인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LG 드럼세탁기가 일반 세탁기보다 물과 에너지 사용량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것을 홍보하기에도 제격이었다. 멕시코법인 이인우 차장은 “멕시코 저소득층은 세탁기가 없는 집이 많다”며 “이들을 위해 지난해 말부터 드럼세탁기를 가지고 빈민가를 돌면서 빨래를 해 주는 서비스를 펼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LG전자는 멕시코에 판매법인뿐 아니라 미주 TV 및 가전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미국 국경과 가까운 레이노사에서 TV를 생산하고 있으며, 멕시칼리에는 모니터 생산기지가 있다. 몬테레이에서는 냉장고, 오븐 등 가전제품을 만든다.

LG전자가 멕시코인에게 다가서려는 사회공헌 노력은 시장에서의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멕시코 시장의 프리미엄급(하단 냉동고형) 냉장고 시장에서 2011년 점유율 53%로 기존 멕시코의 가전 강자인 마베(14%), 월풀(12%)을 크게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드럼세탁기도 지난해 점유율 50%를 달성해 월풀(5%), 마베(3%)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수호성인이 내려온 것 같아요”

같은 날 LG전자가 물탱크 설치를 지원한 바스코 데 키로가 초등학교에서는 흥겨운 축제가 한창이었다. LG전자 일행을 환영하는 행사였다. 학생 60여 명을 포함한 마을 주민 100여 명이 학교 입구에서부터 LG와 평화재단 로고가 그려진 손깃발을 흔들며 일행을 맞았다. 손깃발은 학생들이 직접 그린 것이다.

학생들은 꽃으로 장식한 목걸이를 걸어준 뒤 기타, 아코디언, 드럼 등 악기로 전통음악을 연주했다. 나우아틀어와 스페인어로 부른 노래는 ‘멀리서 온 손님을 위하여’. 아직 이 마을에는 한 번도 외국인이 발길을 들여놓은 적이 없다고 했다. 동네 할머니들까지 모여 우리 일행과 손을 잡고 춤을 췄다. 학생들은 물탱크가 그려진 대형 걸개그림을 보여 주고 감사의 편지를 읽어 줬다. 학생들은 뜨개질로 손수 짠 선물을 건넸다.

이들에게 LG전자와 평화재단은 생명의 물을 가져다 준 수호성인(守護聖人)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곳 원주민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다. 마을마다 수호성인이 있다. 1년에 한 번 있는 수호성인 축일이 마을의 가장 큰 축제일이다. 마을 주민 막달레나 카노 씨(42)는 “수호성인 축일 이외에 우리 마을에서 이처럼 큰 잔치가 열린 적이 없다”며 “학교와 마을에 물탱크가 설치된 뒤 정말 신이 우리에게 성인을 내려보낸 것처럼 행복하다”고 말했다.

베라크루스·멕시코시티=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LG전자#물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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