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김광현/제동걸린 무분별 언론제소

  • 입력 2004년 8월 8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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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 들어 정부 각 부처가 언론사를 상대로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무차별적으로 요구하는 행태에 대해 최근 사법부가 경종을 울리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건설교통부가 주택종합계획과 관련한 동아일보의 보도 내용에 대해 ‘정정보도문을 게재해 달라’고 청구한 것을 4일 기각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의 보도 내용은 사실에 기반한 의견 표명이거나 추론이 가능한 사실을 쓴 것”이라면서 “국민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주택개발사업은 합리적이고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비판은 폭넓게 허용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사안의 경과는 이렇습니다.

건설교통부는 앞으로 10년간 전국적으로 500만가구를 공급하고, 이를 위한 1억3000만평의 택지 가운데 4500만평은 100만평 이상의 대규모로 개발하겠다는 내용의 주택종합계획을 올해 2월 16일 발표했습니다.

본보는 이를 2월 17일자에 ‘집값 잡는다고 땅값 부채질, 신도시가 쏟아진다’는 제목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100만평 이상의 대규모 택지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미니 신도시’라고 표현했습니다. 또 총선을 얼마 남기지 않고 발표한 데 대한 시기적 의혹도 전문가들의 견해를 취재해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건교부는 “자신들이 보도자료에 ‘신도시’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는데 왜 신도시라고 했느냐” “총선과 무관한 대책이다’며 본보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 신청을 냈습니다.

본보는 고심 끝에 정정보도는 물론 반론보도를 받아들이는 것도 거부하고 재판으로 갔습니다.

굳이 재판까지 가는 번거로움을 선택한 것은 언론 상식상 납득하기 힘든 것을 갖고 일일이 시비를 걸어 문제 있는 정책에 대한 비판의 날을 무디게 하려는 정부의 태도를 더 이상 용납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언론의 지적에 대해 너무 자주 ‘발끈’하는 정부 각 부처와 청와대의 언론에 대한 태도가 좀 더 성숙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김광현 경제부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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