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게 이렇군요]권노갑고문 날개접은 까닭은?

  • 입력 2000년 7월 9일 18시 34분


《정치의 이면 흐름을 짚어주는 ‘정치, 그게 이렇군요’난을 신설합니다. 이 난은 다양한 정치적 사건의 내밀한 속사정을 파헤쳐 보여줌으로써 정치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높이고 우리 정치의 질(質)에 변화를 주기 위한 시도입니다.》

지난달 23일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 출마의사를 밝혔던 민주당 권노갑(權魯甲)고문이 보름 만에 돌연 뜻을 접은 배경은 무엇일까. 그동안 여권 내에서 나돌았던 동교동 내부 갈등설과 파워게임설은 권고문의 진퇴와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가.

▼6월19일~21일▼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6월19일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날 민주당 서영훈(徐英勳)대표가 “최고위원 경선은 9월 정기국회 이전에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8월 전당대회’를 공식 언급한 것이 여권 내 ‘경선 파워게임’의 시작이었다.

김옥두(金玉斗)사무총장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김총장은 다음날 당 6역 회의에서 “쓸데없이 전당대회 시기문제를 말씀하고 다니는 분이 있고…”라며 언성을 높였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

김총장은 8월 전당대회론을 주장하며 경선 준비중이던 한화갑(韓和甲)의원에 대해서도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김총장이 권고문과 가까운 사이인데다 K씨 등 권고문측 참모들이 “전당대회가 연말이나 내년 초로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다녔기에 김총장의 그런 태도는 권고문의 의지와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을 낳았다.

전당대회 시기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달 21일 청와대 당무보고 자리에서 김옥두총장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전당대회 과열이 우려된다”고 보고하자 김대통령은 “어차피 경쟁하는 것이니 과열문제에 신경 쓰지 말라”며 8월 전당대회 개최를 지시했다. 서대표와 한의원의 ‘판정승’처럼 보였다.

더구나 같은날 오후 한의원이 김대통령을 독대하고 나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내에선 동교동 진영의 무게중심이 한의원 쪽으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설도 대두됐다.

문희상(文喜相)의원 등 일부 인사가 한의원이 동교동계의 ‘대표자격’으로 최고위원에 나설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 작업에 들어간 것도 이즈음. 권고문과 절친한 핵심실세 모씨마저 ‘무등회’라는 호남 출신 실업인들 모임에서 “한의원이 최고위원에 출마한다는데 도와줘야 할 것 아니냐”고 발언하기도 했다.

▼6월22일~7월1일▼

그러나 상황은 하루 만에 역전됐다. 권고문이 22일 김대통령을 독대한 뒤 다음날 기존의 경선불출마 입장을 번복한 것. 권고문은 “이인제고문도 출마할 것으로 안다”며 이고문과의 유대를 과시했다. 동교동계 좌장으로서 경선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한광옥(韓光玉)대통령비서실장도 한의원 진영에 가 있던 박양수(朴洋洙)사무부총장을 권고문 캠프에 참여토록 지시하는 등 권고문을 후원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대세는 순식간에 권고문에게로 기울었다. 26일 서대표 경질론이 대두됐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28일 김총장의 주선으로 권고문과 한의원 등 동교동 핵심부가 회동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한의원은 ‘양갑(甲) 회동’ 후 권고문이 ‘동교동 조직의 영원한 장형’임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선 “한의원이 권고문에게 백기투항했다”는 말도 나왔다.

여세를 몰아 권고문 진영은 1일 강원 문막 오크밸리 골프장에서 안동선(安東善) 윤철상(尹鐵相) 이훈평(李訓平) 조재환(趙在煥)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1박2일 단합대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한의원과 가까운 사이였던 김영배(金令培)의원도 참석했다.

▼7월2일~7일▼

그러나 권고문의 ‘독주’에 대한 당 안팎의 반발도 거세졌다. 특히 ‘양갑 연대’에 더해 이인제고문까지 포함한 3자연대를 추진한다는 구상이 ‘불공정 경선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권고문의 출마 자체가 ‘구(舊)정치로의 회귀’로 비쳐질 것이라는 등 비판론이 비등하자 권고문은 5일 김대통령을 독대한 뒤 7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런 와중에서 권고문과 한의원 진영간에는 상당한 감정의 앙금이 생긴 것이 사실. 이 때문에 과거와 같은 단일 계보로서의 동교동계는 이제 더 이상 그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됐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동교동계 내부의 이 같은 밀고 당기기는 낮은 수준에서 우리 정당정치의 가장 보편적인 파워게임의 한 양상을 보여준다. 민주당의 경선 갈등이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다시 한번 꿈틀거리면서 재반전될지 주목된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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