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에 바란다 ②]최상룡/新開化 역사의식 가져야

  • 입력 1998년 2월 9일 20시 15분


우리 역사에서 98년은 국제통화기금(IMF)시대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냉전시대에서 IMF시대로 이행하는 전환점에서 21세기를 맞게 되었다. 냉전시대에는 서방진영에 속해 있던 것만으로도 어느정도 체제의 유지가 보장되었으나 IMF체제하에서는 나라의 안정과 몰락이 우리 스스로의 정치적 선택여하에 달려 있다. IMF를 통한 자기개혁은 잘만 하면 5년동안의 문민개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양질의 구조개혁이 될 수 있다. 외세가 국내정치의 구조개혁에 도움이 된 역사적 선례로 보아 IMF라는 외압이 우리사회의 구조개혁을 위한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반(反)외세가 아니라 신개화(新開化)의 역사의식을 가지고 국민앞에 나라의 방향을 분명히 제시하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본다. 그러나 국민적 합의에 토대를 두지 않는 개혁은 허구로 끝난다. 개혁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는 방향성을 잃고 사회는 연대성을 잃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대타협을 이뤄낸 노사정(勞使政) 협약은 역사에 남을 만한 의미있는 출발이다. 계급과 계층간의 타협인 노사정협약과 함께 국민통합의 또 하나의 축(軸)은 역시 지역통합이다. 새 정부는 지역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과 용기를 보여주기 바란다. 문화적인 지역성은 건설적으로 살리되 정치적 지역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테면 인사, 특히 고위직만이 아니라 중하위직에도 지역적 편향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선거구가 중대형으로 조정이 된다면 호남 영남 충청 경기 등 각 지방의 접경지역을 한 선거구로 묶어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제 노사정의 대타협으로 국민통합의 기본틀이 제시된 이상 정치분야부터 솔선하여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회 선거 정당은 물론 통일 외교 안보 등의 정치과제도 IMF시대에 맞춰 내실화의 프로그램을 새로 짜야 한다.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국회상임위, 특히 예결위의 연중공개와 TV중계, 후원회를 통한 정치자금의 투명한 사용 등을 이번 기회에 꼭 제도화해야 한다. 남북 관계도 예측가능한 틀을 제시해야 한다. 남북합의서에 바탕을 둔 평화공존이 남북관계의 기본틀임을 국내외에 천명하는 것이 좋다. 북한과의 교류를 위해서는 결국 북한의 체제유지에 도움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정경(政經)분리의 탄력적 운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민족의 이익이나 인도적 차원의 사업 가운데 북한이 수락하면 언제라도 실현가능한 정책들을 내놓고 참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번 IMF시대를 맞으면서 외국, 특히 우방국가로부터의 신뢰와 도움이 없으면 생존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다. 한미간의 동맹을 당연시하는 타성에서 깨어나야 하고 중 북한 관계를 부동의 혈맹으로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하며 러시아를 너무 과소평가해서도 안된다. 그리고 밉든 곱든 일본은 고비마다 우리의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인식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국가안보와 사회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국민이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더욱이 ‘국민의 정부’로 불리길 바라는 새 정부라면 안보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실하게 얻어야 한다. 아직도 우리 국민은 IMF시대가 가계 기업 국가에 준 충격과 위기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위기가 일상화하면 위기의식마저 마비되어 허탈과 절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새 정부는 위기관리의 기본틀이 마무리되면 그 다음엔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담은 중장기적인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 민주주의와 경제의 동시발전은 바람직한 목표이다. 그러나 지구경제는 시장화와 불평등을 낳고 민주주의는 인간화와 평등화를 요구한다. 이 둘 사이의 안이한 병존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새 정부는 오히려 경제와 민주주의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사려깊은 청사진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세계는 비(非)서구국가에서 공명선거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한국국민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해방후 지금까지 국민의 수준은 향상되어 왔는데 대통령의 질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비판을, 김대중 차기대통령은 임기중의 업적으로 말끔히 씻어주기 바란다. 최상룡(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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