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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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3월 16일 17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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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계가 정부가 내놓은 수의테크니션 법제화로 시끄럽다.

수의테크니션은 미국에서 수의 업무를 보조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국내에서도 그대로 쓰인다. 동물간호사쯤 된다고 보면 된다.

동물병원에 가보면 사람병원에서처럼 간호사 복을 입고, 일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들려오는 호칭도 '김선생, 이선생, 김샘, 이샘' 등으로 사람병원과 같다. 그래서 동물병원에도 간호사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공식적으로 간호사가 아니다. 분명 동물 환자를 맞이하고, 내원 일정을 잡아주며, 때로는 처치를 하는 수의사 옆에서 진료를 돕지만 이들은 그저 직원일 뿐이다.

현실 속에서는 분명 존재하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명칭에 걸맞게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법제화 추진을 들고 나왔다.

수의사법 시행령 제12조를 개정, 동물 진료를 할 수 있는 자의 범위에 수의테크니션을 추가하겠다는 게 골자다. 지금은 수의사와 수의대생, 그리고 자신의 동물을 치료하는 자, 이렇게 셋 뿐이다.

정부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진료 행위를 시행규칙에 별도로 나열할 방침이다. 스케일링, 채혈, 주사가 예시로 제시됐다. 정부는 그러면서 일자리 창출과 동물병원 개설자 등의 업무 경감을 목적으로 내걸었다.

현실의 수의테크니션들은 대체로 최저임금과 비슷한 월 120만원에서 시작한다. 경력이 쌓이면서 조금씩 올라가기는 하지만 월 200만원을 넘길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게 중론이다. 직업으로서 미래 비전을 얘기하기도 쉽지 않다.

정부의 의도대로 된다면 수의테크니션들은 전문직업인으로서 커 갈 가능성이 생기고, 동물 진료도 보다 체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업무 경감의 수혜자들인 수의사들은 정부 안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반려동물 수가 40배나 많다", "동물병원 진료체계도 전문화돼 있지 않다", "자가진료 폐지 등 선진화가 먼저다" 등등. 수의테크니션(가칭) 제도 도입을 놓고 수의계가 보인 반응들이다.

협의도 없이 추진하는 것은 차치하고, 경제적 측면만 보자면 반려동물 수의시장이 충분치 않은데 비용 상승만 가져올 수 있는 수의테크니션 제도화가 왜 필요하느냐는 것이다. 혹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1만7000여명의 수의사가 있고, 매해 500명 안팎의 수의사가 새로 배출된다. 대부분 임상수의사로 나선다. 즉, 동물병원에 취직하거나 혼자 혹은 여럿이서 동물병원을 연다.

박봉에 시달리다 못해 빚을 내어 자기 병원을 여는 경우도 많다. 그런 가운데 동물병원은 계속 늘어나 현재 4,000개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의사 숫자만큼은 선진국이죠. OECD 가입 국가중 반려동물 대비 수의사가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일껄요." 한 수의사의 푸념이다.

제도화가 이뤄질 경우 그만큼 임금은 올라갈 요인이 생긴다. 수의사들 주장대로 현재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은 상황이라면 오히려 현재 근무하고 있는 직원을 줄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4자리가 3자리로, 혹은 3자리를 2자리로 줄이는 식으로 말이다.

매해 초가 되면 언론을 장식하는 기사가 있다. 올해도 그렇다. 최저임금이 올라 해고 위기에 처한 아파트 경비원 기사다. 분명 선한 의도를 갖고 추진한 정책이 오히려 약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수의테크니션 제도화 역시 선한 취지라는 데에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명분이 있다고 해서 별다른 업계 의견 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은채 일단 던지고 보자는 식의 추진은 동의하기가 어렵다.

무턱대고 밀어 부쳤다가는 일자리 창출과 업무 경감이라는 당초 취지는 살리지 못한 채 수의테크니션 학원들만 배를 불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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