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의 반려견과 사랑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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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년 12월 1일 11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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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1박2일 일정으로 정호승 시인과 함께 하는 경상북도(영주, 예천, 상주) 인문기행을 다녀왔다. 정 시인은 긴 설명이 필요없는 지금 시대 최고의 서정시인 가운데 한 분으로 꼽힌다. 그는 우리의 삶을 고통과 사랑, 슬픔, 관계 등으로 노래하고 그 속에는 늘 울림이 있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찡해지곤 한다.

시인은 이번 여정 중에 당신이 쓴 몇몇 시를 읊으시면서 자신도 영글지 못한 내면을 갖고 있다고 겸손해 했지만, 동행에게는 ‘사랑’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화두를 안겨줬다.

그는 부석사 무량수전 앞뜰에서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로 시작하는 ‘그리운 부석사’를 낭독하며 천년동안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16개의 배흘림기둥의 고통과 배려에 대해 얘기했다. 자신도 누군가를 위한 17번 째 배흘림기둥이 되고자 한다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낙동강 물줄기가 휘감고 돌아가는 ‘경천대’에서는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란 시의 마지막 문장, ‘오늘도 강아지가 먼저 나를 용서할까봐 두려워라’를 언급하면서 스스로에게 강아지보다 나은 게 뭐가 있는지 되묻는단다.

당대 최고의 시인이 강아지와 자신을 비교하며 자연스레 속내를 드러내지만, 듣는 이에게는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묵직함이 전해온다. 말씀은 부드럽지만 강하다. 이미 많은 독자들이 애독한 시이지만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란 시를 옮겨본다.

나는 왜 아침 출근길에

구두에 질펀하게 오줌을 싸놓은

강아지도 한 마리 용서하지 못하는가.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구두를 신는 순간

새로 갈아 신은 양말에 축축하게

강아지의 오줌이 스며들 때

나는 왜 강아지를 향해

이 개새끼라고 소리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개나 사람이나 풀잎이나

생명의 무게는 다 똑같은 것이라고

산에 개를 데려 왔다고 시비를 거는 사내와

멱살잡이까지 했던 내가

왜 강아지를 향해 구두를 내던지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는데

나는 한 마리 강아지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진실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윤동주 시인은 늘 내게 말씀하시는데

나는 밥만 많이 먹고 강아지도 용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인생의 순례자가 될 수 있을까.

강아지는 이미 의자 밑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강아지가 먼저 나를 용서할까봐 두려워라.

17년 간 반려견과 함께 살다가 이별의 아픔을 가슴에 묻은 정 시인은 “아침에 꾸중 받고 의자 밑으로 숨어든 강아지가 저녁이면 꼬리치며 반기는 것은 이미 야단친 주인을 용서한 몸짓”이었다고 설명한다.

하물며 인간으로서 강아지만도 못한 행동을 보이는 게 싫어서 이 시를 썼다고 말한다. 그는 시인에 대해 특별한 사람이라고 오해하지 말라고 말한다. 시인이라고 보통사람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단다. 다만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에 사랑을 배워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인은 삶은 관계의 연속이라며 ‘관계가 힘이 들 땐, 사랑을 선택하라’는 헨리 나우웬의 말을 덧붙이면서 모든 일의 시작과 마침에는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얼마간의 자유시간에 불과하다’고 설파한 피에르 신부의 말로 사랑의 당위와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사람이든 반려동물이든 생명이 있는 것에 대해서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개나 사람이나 풀잎이나 생명의 무게는 다 똑같은 것’이라고 말한 정 시인의 싯구를 다시금 곱씹어본다.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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