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무장한 대한항공 격납고, 비행기 고장을 ‘예언’한다

  • 동아일보

[K제조 바꾸는 AI로봇]
〈10〉 고장 예측하는 대한항공 ‘AI 정비’
2023년 AI 예지정비 도입
빅데이터로 고장 미리 예측… 작년 결항 1건-회항 12건 막아
기내 객실 환경도 더 쾌적

오종훈 대한항공 예지정비팀장(왼쪽)이 최근 서울 강서구 하늘길 대한항공 본사 격납고에서 항공기를 정비 중이던 정비사와 AI 기반으로 도출된 예지정비 데이터를 보며 정비 내용을 논의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2023년 시작한 예지정비의 고장 신호 예측률은 당시 70% 수준에서 현재 85% 수준까지 높아졌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오종훈 대한항공 예지정비팀장(왼쪽)이 최근 서울 강서구 하늘길 대한항공 본사 격납고에서 항공기를 정비 중이던 정비사와 AI 기반으로 도출된 예지정비 데이터를 보며 정비 내용을 논의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2023년 시작한 예지정비의 고장 신호 예측률은 당시 70% 수준에서 현재 85% 수준까지 높아졌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최근 방문한 서울 강서구 하늘길 대한항공 본사와 연결된 김포공항 대한항공 격납고. 보잉 737 기종과 에어버스 A220, A330 기종 등 항공기 5대가 빼곡히 들어찬 가운데 엔진이나 날개 일부가 분리돼 수리되고 있었다.

반사 밴드가 부착된 정비사용 안전 점퍼를 입고 정비에 한창인 정비사들 사이로 비즈니스 정장 차림의 오종훈 대한항공 예지정비팀장이 노트북 한 대를 손에 들고 등장했다. 오 팀장은 한 정비사와 각종 그래프 및 숫자들이 복잡하게 떠 있는 노트북 화면을 보며 대화를 나눴다. 이는 인공지능(AI)이 사전에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정비 필요성을 제시한 데이터. 이를 바탕으로 오 팀장은 항공기의 고장을 방지하고자 사전에 수리를 요청한 것이다.

● 2억 개 데이터로 고장 예측

통상 비행기 정비는 자동차 엔진오일 교환처럼 일정 주기나 시점마다 해당 부분을 점검하거나 소모품을 교체하는 ‘주기 정비’와 항공기 센서가 고장 신호를 표시하면 필요한 정비를 하는 ‘사후 정비’로 나뉘어 왔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2023년 8월부터 머지않은 시점에 고장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 항공기를 미리 파악하고 사전에 정비하는 ‘예지정비(豫知整備)’를 시행하고 있다. 오 팀장이 이끄는 대한항공 예지정비팀은 이른바 고장나지 않은 비행기의 고장을 미리 ‘예언’하는 팀이다.

예언이 가능한 배경에는 빅데이터와 AI가 있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항공기 한 대에 장착된 센서는 최대 2500여 개로, 각 센서가 통상 1초에 1건씩 데이터를 생성한다. 유럽이나 미국을 오가는 비행편의 경우 비행 한 번에 최대 2억 건이 넘는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회사 전체 비행기에서 하루에 수집되는 데이터 용량은 62GB(기가바이트)로 전자책 6만3000여 권 분량이다.

대한항공은 이 데이터를 자체 개발한 AI 시스템을 비롯한 각종 알고리즘을 활용해 분석한다. 보잉과 에어버스 등 항공기 제작사에서 만든 시스템도 함께 활용하지만 자체 개발한 시스템도 상당하다. 특히 한국의 기후나 환경 등에 따라 제조사 표준 매뉴얼과 다른 운용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잦기 때문에 ‘한국형 예지정비 시스템’은 직접 만들었다.

경험과 데이터가 쌓이면서 팀 설립 당시 70%였던 ‘고장신호 예측률’은 2년 반 만에 85%까지 높아졌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 예지정비가 막아낸 결항이 1건, 회항이 12건이다. 지연은 110건이나 예방했다. 사실 항공기에서 만들어지는 수십 년 치 데이터들을 모두 AI 활용이 가능하도록 디지털화하는 비용은 상당했다. 하지만 경영진에서 “꼭 필요한 일이니 필요한 건 다 하라”고 밀어줬고, 현재는 ‘투자 비용’을 모두 회수했을 뿐만 아니라 예지정비가 아껴주는 비용만 연간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비용 절감’ 목적으로만 예지정비가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제조사 매뉴얼상 6000비행시간마다 교환하도록 나와 있는 한 공기 순환 필터의 경우 예지정비 시스템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오염도가 전 세계 평균치보다 훨씬 빠른 것으로 나타나 교환 주기를 줄였다. 오 팀장은 “미세먼지가 심한 한국 기후 특성이 원인으로 보여 필터 교환 주기를 2500시간으로 단축했다”며 “단기적 비용은 더 들겠지만 필터 오염으로 인한 고장 발생을 미리 방지하고 승객들도 더 쾌적하다고 느낀다면 장기적인 측면에서 회사에도 좋은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 적중률 85%에 정비사들도 ‘깜짝’

예지정비팀이 처음 꾸려져 업무를 시작했을 때는 어려움도 있었다. 안 그래도 쉴 새 없이 정비 업무가 밀려드는데 예지정비까지 추가되면 일이 과중해진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비사 출신인 오 팀장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격납고에 나가 동료 정비사들을 설득하는 동시에, 실제 예지정비의 ‘적중률’이 높다는 증명을 해내야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증명할 기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항공기의 데이터에서 비행 중 객실 온도에 관여하는 ‘프리쿨러’의 온도가 이상하게 출렁이거나 상승하는 ‘비정상 신호’가 예지정비 시스템에 감지된 것이다. 프리쿨러는 엔진의 뜨거운 열과 외부의 차가운 공기를 활용해 객실 온도를 적정하게 유지해주는 항공기의 에어컨 시스템 일부다.

예지정비팀은 프리쿨러 수리가 필요하다고 즉시 전달했고, 정비사들이 이 비행기의 프리쿨러를 뜯어봤더니 실제로 내부 부품이 손상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확인됐다. 온도가 임계치까지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경고등이 뜨지는 않았지만, 만약 비행 중 완전히 작동을 멈췄다면 객실 온도 조절이 안 돼 비행기를 돌려야 하는 상황까지도 생길 수 있었다. 오 팀장과 함께 해당 상황을 설명하던 김재민 예지정비팀 과장은 “그 외에도 항공기의 좌우 온도 센서가 다르게 기록된 점을 파악하고 센서 내부에 이물질이 들어갔는지 확인해 달라고 의뢰했더니 실제 벌레가 발견돼 정비사들이 감탄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대한항공은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 에어버스와도 지속적으로 데이터와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예지정비 적중률을 더욱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회사 측은 “AI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공된 자료에 숙련 정비사의 노하우가 더해지면서 예지정비 효율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정비 외에도 연료 수요 예측, 비행 경로 최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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