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대책 성공적… 日규제 넘어 탄탄한 산업 생태계 구축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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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말하는 ‘소부장’ 대응 1년

김성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왼쪽)과 박재근 한양대 교수가 9일 경기 성남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회의실에서 ‘소부장’ 1년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개선 방향을 논의하는 대담에 나섰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제공
김성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왼쪽)과 박재근 한양대 교수가 9일 경기 성남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회의실에서 ‘소부장’ 1년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개선 방향을 논의하는 대담에 나섰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제공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국내 핵심 산업의 숨통을 조이겠다며 강행한 조치에 국내 산업과 과학기술계는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정부가 즉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 연구개발(R&D) 투자 및 세제 지원 등 대책을 내놓고 이어 한 달여 만인 지난해 8월 말 100대 핵심전략품목을 관리하기 위한 분석에 들어가면서 오히려 국내 장기적인 생태계 흐름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국내 소재기업이 불화수소 국산화 등을 이루면서 실체가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이달 9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적 반도체 기업인 SK하이닉스에서 기존의 정부 대응책을 확장한 ‘소부장 2.0’을 발표하며 중국 추격과 글로벌 밸류체인의 급변에도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바이오와 미래차 등 신산업과 자동차, 패션, 전자전기 등 3대 업종을 포함한 238개 품목을 추가해 총 338개 품목에 대해 공급망을 관리할 계획이다. 사실상 소부장 대책이 일본 수출규제 대응을 넘어 한국 산업기술의 미래를 다시 짜는 기회가 된 것이다.

정부 각 부처에 산재한 소부장 R&D 대응책을 총괄해 온 김성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으로 이번 사태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박재근 한양대 석학교수(융합전자공학부)를 이달 9일 경기 성남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회의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지난 1년간의 정부와 기업의 대응이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며 “소부장 2.0이 성공하기 위해 소부장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법 개정과 인력 안정화를 위한 선순환 생태계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 본부장은 “100대 품목 가운데 내년 초까지 공급 안정이 필요한 20개에 대해 진척 상황을 모니터링한 결과 기대 수준을 넘었다”며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도 소부장 2.0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에는 혁신본부가 맡은 R&D 외에도 금융과 세제 혜택, 인허가 과정 개선 등 여러 부처가 합심해 마련한 종합적인 대책이 있는데, 이 역시 현장인 소재기업의 R&D와 대기업의 구매 덕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김 본부장은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일본을 긴장하게 만들 ‘비수’와 같은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본부장과 박 교수는 “결코 현실에 안주할 수 없는 게 냉정한 현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근 1년간 상황이 또다시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한국이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 역시 자극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중국의 추격 속도가 더 빨라졌다. 또 미중 갈등의 불확실성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글로벌 밸류체인의 급변 상황 등이 오히려 중국을 자각시켰다.

소부장 2.0전략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박 교수는 “소부장 2.0의 최종 목표는 ‘소부장 전 품목의 국산화’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국내 기업에 필요한 모든 부품소재를 국내 제품으로만 채울 수는 없는 일이다. 김 본부장은 “공급의 안정화가 더 중요하다”며 “기술적으로 가능하거나 우리가 해야 할 것만 국산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지난해에 100대 핵심전략품목별 기술 수준과 대외 의존도 등을 200명의 전문가와 분석했다”며 “품목별 현 기술 수준과 시장 상황, 주요 개발 주체, 대체 가능성, 필요한 예산 등이 모두 정리됐고 부처는 이에 따라 단기부터 중장기까지 맞춤형 투자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소부장 2.0이 성공하기 위해 정부가 해결해야 할 숙제도 남아 있다. ‘화평법(화학물질등록평가법)’과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등 현 제도가 소부장 기업에 부담을 주고 있어 부품소재 기술 개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포토레지스트 개발을 할 경우 중간물질을 확보하려고 해도 모두 신고와 허가가 필요하다. 박 교수는 “특히 해외 기업이 들어올 때 큰 장애물이 된다”며 “지난해에는 정부가 테스트베드를 만드는 식으로 한시적으로 규제를 유예했는데 이를 지속시킬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불화수소 생산기업 솔브레인이 공장을 증설한 것처럼 파격적인 허가를 한 선례가 있는 만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인력도 중요하다. 김 본부장은 “지역에 소부장 중소기업이 많지만 대기업으로 빠져나가는 일이 반복되며 인력이 유지되지 않고 성장이 지체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지역 대학 연구진을 기업과 잘 연계하는 방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아직도 지역 연구중심대학 평가가 논문이다 보니 기초과학만 강조하게 되는데 이래서는 일본의 100년 기업을 따라잡을 수 없다”며 “이들을 소부장 특화 대학으로 육성시켜 기술 난도가 높은 연구를 하도록 장려해 기업과 연계시키는 장기적인 선순환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근태 kunta@donga.com·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일본#수출규제#소부장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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