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백신개발 선진국… 국제 사회에 도움줘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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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김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총장

“백신 개발은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받은 도움을 갚을 수 있는 좋은 소재다. 한국의 생명과학 발전에도 큰 기회가 될 것이다.”

6일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국제백신연구소(IVI)에서 만난 제롬 김 IVI 사무총장(사진)은 세계적으로 백신 연구개발이 부족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한국과 같은 선진국이 더 관심을 가져 줄 것을 요청했다.

IVI는 20년 전인 1997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설립한 비영리 국제연구소다. 개발도상국에 공급할 값싸고 효과 좋은 백신 개발과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1년 먹는 콜레라 백신을 개발 및 상용화해 개도국에 저렴하게 공급 중이다. 두 번째 백신인 장티푸스 백신은 국내 기업에 기술을 이전해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 본부를 둔 최초의 국제기구이기도 한 IVI에는 세계 10여 개 나라에서 온 과학자와 직원 128명이 근무한다. 한국계 미국인인 김 사무총장 역시 평생 미국에서 백신과 바이러스를 연구하다 2015년 IVI 3대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지난 20년 IVI의 성과는 적지 않다. 그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승인을 받은 먹는 콜레라 백신 등 두 개의 백신을 상용화했고 1600만 개를 개발도상국에 보급했다”며 “백신은 기초 연구부터 임상시험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까다로운 과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작지 않은 성과”라고 말했다. IVI는 세 번째로 개발할 백신 선정 작업을 지난주 시작했다. 15일에는 20주년 기념 포럼을 열어 그간의 성과를 돌아보고 향후 연구 주제를 논의할 계획이다.

백신 개발을 위한 연구 기금 확보는 쉽지 않은 문제다. 백신을 개발할 역량이 있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장티푸스나 콜레라, 이질 같은 질병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감염병 백신 개발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이 적어 주요 7개국(G7) 중 IVI에 운영비를 지원하는 나라는 한 군데도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백신이 없어 목숨을 잃는 어린이는 지금도 연간 150만 명에 달한다.

김 사무총장은 “현재 한국과 스웨덴, 인도 정부와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 삼성재단, 일부 기업의 후원으로 유지되고 있다”며 “미국 국립보건원(NIH)이나 영국의 의학 재단인 웰컴트러스트, 개인투자자 등으로 후원자를 확대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올해 한국에서는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등 일부 단체가 백신 부작용을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백신에 대해 부정적 언급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거짓 정보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오해”라며 “정확한 의학적 정보를 대통령부터 시민에게까지 일관성 있게 제공한다면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도 내게 5분만 준다면 제대로 설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미국 듀크대 의대 교수를 거쳐 미 육군 군사의학연구소인 월터리드 연구소에서 에이즈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HIV연구프로그램(MHRP)의 수석 부책임자를 지낸 세계적 백신 전문가다. 남성 간 성행위를 통해서만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여성에게도 감염된다는 사실을 1980년대에 처음 밝혀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에이즈 진단과 치료 프로그램을 수립하고, 20년에 걸친 백신 개발 계획을 세우는 데도 관여했다. 에이즈 백신 개발 가능성을 최초로 제시한 임상시험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는 “20년 넘게 연구했지만 HIV에는 아직 효과적 백신이 없다”며 “남아프리카에서 진행 중인 후속 연구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아직도 에이즈 환자가 증가하는 나라 중 하나”라며 “예고 없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창궐하는 등 감염병 안전지대가 절대 아니다. 한국도 백신 공동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제롬 김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총장#백신 개발#hiv 백신#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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