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연봉의 2배… 정확한 예보로 보답해야죠”

  • 입력 2009년 10월 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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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니스 크로퍼드 기상청 기상선진화추진단장이 5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길 기상청사 2층 국가기상센터에서 이날 일기도를 분석하고 있다. 크로퍼드 단장은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국가레이더운영센터를 설립해 ‘맞춤형 기상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 사진 더 보기
케니스 크로퍼드 기상청 기상선진화추진단장이 5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길 기상청사 2층 국가기상센터에서 이날 일기도를 분석하고 있다. 크로퍼드 단장은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국가레이더운영센터를 설립해 ‘맞춤형 기상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 사진 더 보기
기상청 첫 외국인 고위공무원, 크로퍼드 단장의 한국살이 50일

“한국 예보관들 능력 뛰어나지만 업무 효율성 높일 필요
정부 지원 필수… 예산 지금의 2배는 돼야 선진화 가능
맵고 짠 한국음식엔 적응 못했지만 장구 치는건 즐거워”

“예보 정확도를 하루아침에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오보(誤報)에 대해 해명하는 것도 좋은 해결책은 아닙니다.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질 높은 기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면 예보 적중률은 자연히 높아질 것입니다.”

기상청이 지난해 여름 연달아 오보를 내면서 국민의 비판이 쏟아지자 예보 적중률을 높이기 위해 ‘구원투수’로 영입한 케니스 크로퍼드 기상선진화추진단장(66·미국 오클라호마대 석좌교수 휴직)은 기회 있을 때마다 직원들에게 이렇게 강조한다. 5일 국내 언론 중 가장 먼저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한 그는 부임 후 47일간 느꼈던 기상청의 장단점을 가감 없이 얘기했다. “좋은 기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기상청의 업무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점과 “기상 선진화를 위해서는 경제적,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 “특보 결정하면 1분 안에 발령해야”

크로퍼드 단장은 “한국 예보관들은 미국 예보관들과 비교해도 능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고 일은 오히려 더 열심히 한다”며 “한국 예보관들의 업무 능력이나 의욕은 기상청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8월 기상청이 6주 연속 주말 날씨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데 대해서는 “한국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예보를 하기 매우 어려운 환경”이라며 “이런 상황에 맞는 예보관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예보관 훈련에 적용한다면 예보 적중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기상청 내에서 각 과나 부서 간 의사소통이 느린 점은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상특보를 발령해야 할 경우 예보관이 판단하는 순간부터 특보 발령까지 걸리는 시간이 1분이 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소통 시스템을 개선하고 예보관 훈련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요.”

크로퍼드 단장이 언급한 또 하나의 문제는 기상청 홈페이지가 정보를 알기 쉽고 빠르게 전달해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근무하던 미국 오클라호마 주 기상청 홈페이지를 보여줬다. 화면 한가운데 그려진 큰 지도에 기상정보가 단순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단순하지만 직관적이다. 반면 한국 기상청 홈페이지는 그림보다 글자가 더 많다. 크로퍼드 단장은 “예보에 그래픽을 잘 활용하면 국민이 훨씬 쉽게 정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 레이더센터 설립해야

그래픽을 기반으로 한 예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레이더 시스템이다. 고기압과 저기압의 위치와 구름 흐름 등을 시시각각 파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 그래서 그는 가장 중요한 추진 과제로 국가레이더운영센터(ROC) 설립을 꼽는다. 이 센터에서 수집한 정보를 일반 국민, 정부기관, 방재기관, 언론 등에 ‘맞춤형’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 크로퍼드 단장이 그리는 청사진이다.

“ROC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기상청과 공군, 미국 공군, 국토해양부 등에서 각각 운용하고 있는 기상레이더 총 26개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표준화된 정보처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책 지원과 예산 확충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크로퍼드 단장은 “정책이나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시간을 아무리 효율적으로 사용해도 구상한 계획을 2012년 임기까지 실행해 보지도 못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한국의 기상 선진화 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기상청의 올해 예산은 약 2260억 원. 기상업무 선진화를 위해 기상청이 바라는 1년 예산은 최소 5000억 원이다.

○ 파란 눈의 공무원에 비친 한국

‘오보의 역사를 씻고 세계 6위로 거듭나라’는 막중한 과제를 맡긴 만큼 기상청은 그에게 최고 수준의 대우를 했다. 기상청 역사상 첫 외국인 고위공무원(1급 상당·차관급)이라는 파격 인사에 대통령 연봉의 2배인 3억2500만 원(26만 달러)의 연봉에 2000cc급 자동차와 99m²(약 30평)짜리 집까지.

“대우가 극진해 오히려 ‘영광’이죠. 한국 정부로서는 저에게 큰 기대를 걸고 투자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나 받기 힘든 대우지만 혹시라도 대우에 불만이 없는지 묻자 크로퍼드 단장은 이렇게 답했다. “한국이 이처럼 좋은 대우를 해주시는 것에 대해 ‘투자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좋은 성과로 보답하겠습니다.”

크로퍼드 단장은 요즘 한국 생활 적응에도 한창이다. 맵거나 짠 한국 음식이 아직 입에 맞지 않아 칼국수 같은 담백한 음식을 위주로 먹는다. 한국어는 아직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의 인사말밖에 하지 못한다. 덕분에 “한 번도 기상 관련 일을 해본 적이 없다”는 이정은 통역관이 인터뷰 중 ‘임팩트 웨더(Impact Weather)’를 ‘사회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기상현상’으로, ‘머신(Machine)’을 ‘컴퓨터 예보 모델’로 번역할 만큼 준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게 됐다.

‘도전을 좋아한다’는 크로퍼드 단장은 주말마다 집을 나서 버스를 탄다. 최근에는 주말을 이용해 남산에서 열리는 전통문화체험교실에도 참가했다며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신나게 장구를 치는 사진 속 그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크로퍼드 기상선진화추진단장 프로필 ▼

-미국 오클라호마대 기상학 박사(1977년)

-미국 기상청 29년간 근무(1961∼1989년)

-미국 기상협회 회장(1988년)

-오클라호마대 기상학과 석좌교수(1989년∼현재)

-오클라호마 주 지정 대표 기후학자(1989년∼현재)

-미국 기상청 현대화위원회 위원(1993∼1999년)

-미국 기상학회 이사(2007년∼현재)

-한국 기상청 기상선진화추진단장(2009년 8월∼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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