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는 우주인의 생명유지장치?

  • 입력 2008년 4월 4일 03시 00분


이소연 씨가 ‘맞춤형’ 우주선 좌석 제작을 위해 욕조 모양의 통에 들어가 있다. 온몸이 물에 젖는 바람에 숙소로 돌아갈 때까지 남성용 속옷을 입어야 했다. 사진 제공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소연 씨가 ‘맞춤형’ 우주선 좌석 제작을 위해 욕조 모양의 통에 들어가 있다. 온몸이 물에 젖는 바람에 숙소로 돌아갈 때까지 남성용 속옷을 입어야 했다. 사진 제공 한국항공우주연구원
8일 우주 가는 이소연씨가 전하는

‘3가지 황당한 우주인 훈련 이야기’

8일 한국인 최초로 우주에 오를 이소연 씨. 지난 1년간 러시아 가가린우주센터에서 엄격한 우주인 훈련을 거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황당한 일들을 겪기도 했다. 이 씨가 전해준 훈련 중 에피소드 가운데 ‘황당 베스트 3’를 뽑았다.

○ 우주선 컴퓨터 처리속도 5Hz면 충분

2007년 소유스 우주선 이론 교육이 있던 날이었다. 우주인을 국제우주정거장(ISS)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는 소유스의 자동운전시스템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발사부터 도킹까지 자동으로 움직이는 첨단기술에 감탄하고 있는데, 교관이 돌발 퀴즈를 냈다.

“소유스 우주선에 탑재된 컴퓨터의 처리 속도는 얼마일까요?”

이 씨는 소유스가 30여 년 전 처음 만들어진 우주선이라는 점을 감안해 자신이 쓰고 있는 컴퓨터의 처리 속도(2GHz)의 몇백 분의 1인 5MHz라고 답했다. 이 속도는 20여 년 전 사용되던 16비트 XT 컴퓨터 처리 속도의 절반 수준.

하지만 돌아온 교관의 반응은 ‘턱도 없다’였다. 이 씨는 다시 1000분의 1로 낮춰 5kHz라고 답했지만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교관이 말한 정답은 단 5Hz. 이 씨는 이런 성능의 컴퓨터로 그동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주인을 ISS에 보냈다는 사실에 혀를 내둘렀다고.

‘아르곤-16’이라 불리는 이 컴퓨터는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해 왔다. 안전성이 최우선인 우주 환경에서 굳이 고성능 컴퓨터를 새로 설치할 필요가 없다.

○ 맞춤 좌석 제작 위해 남자 팬티 입으라니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우주선의 좌석을 갖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소유스가 출발할 때는 지구 중력의 4∼8배에 이르는 힘을 받는데, 의자가 빈틈없이 몸에 꼭 맞아야 발사와 착륙 때 충격을 줄일 수 있다.

의자를 만들 때는 몸의 치수를 재는 방법이 아니라 석고로 몸을 그대로 뜨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한다. 어린아이를 목욕시킬 때 쓰는 욕조같이 생긴 작은 통 안에 들어가서 소유스를 탔을 때와 같은 자세로 쭈그리고 누우면 몸 주변에 액체 상태의 석고를 부어 통을 채운다.

이 씨는 우주선 좌석을 맞추는 과정에서 교관 말을 듣지 않았다가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할 일을 겪어야 했다. 담당 교관은 모자 달린 흰 옷을 건네며 몸이 완전히 젖기 때문에 속옷도 먼저 바꿔 입으라고 했다. 그런데 이 씨는 담당 교관이 건넨 속옷을 받고 깜짝 놀랐다. 남성용 삼각팬티였기 때문이다. 교관이 미처 여성용 팬티를 준비하지 못했던 것. 이 씨는 민망해하며 속옷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통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예상대로 온몸이 다 젖었다. 결국 남성용 속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측정할 때 잠깐만 입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입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측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남성용 속옷을 입어야 했다.

○ 생명유지장치 뜻하는 러시아어 ‘소주’처럼 들려

이 씨는 소유스와 ISS에 대한 이론 수업을 받던 도중 러시아 교관의 입에서 익숙한 단어가 계속 튀어나오는 것을 들었다. ‘쇠주’라고 하는 것도 같고 ‘쏘쥬’라고 하는 것도 같고….

알고 보니 ‘소즈(СОЖ)’는 러시아어로 ‘생명유지장치’의 약자였다. 소유스를 탄 우주인들을 위해 물과 음식, 그리고 산소를 공급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장치를 일컫는 말이다. 소변을 보는 장치나 우주복 등이 포함된다.

그 순간 평소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이 씨의 머리에 번뜩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이 씨는 주말에 모스크바 시내에 나가 한 병에 1만 원이나 하는 한국 소주를 몇 병 샀다. 그리고 다음 수업 시간에 교관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의미로 소주를 선물했다. “직장 생활에 지친 한국인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때때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소개와 함께.

안형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but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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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와 동아사이언스(www.dongascience.com) 동아닷컴(www.donga.com)은 홈페이지 ‘나는 대한민국 우주인이다’(space.donga.com)에서 한국 최초 우주인 탄생과 관련된 속보와 다양한 동영상 정보, 재미있는 읽을거리 등을 제공합니다. 우주선 발사 당일인 8일 이후 러시아 현지에 파견된 기자가 전해오는 속보와 우주인 이소연 씨의 활약상은 물론 특히 국내 최고의 우주전문가인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 스페이스스쿨 정홍철 대표가 우주여행 및 우주인 생활의 모든 것을 동영상으로 소개하며 우주인 후보 30인에 뽑힌 과학동아 안형준 기자가 우주인 배출 과정의 뒷이야기를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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