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소아비만]<上>증상과 실태

  • 입력 2008년 2월 25일 02시 50분


성인병+열등감… 몸도 마음도 ‘끙끙’

《“건강하기도 하지.”

날로 살이 찌는 자녀를 보며 부모는 ‘건강의 증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소아비만은 건강이 아니라 질병의 증거다.

서구적인 식생활이 보편화되면서 먼 나라 얘기일 것 같았던 소아비만이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대한소아과학회 조사에 따르면 전체 아동의 10∼15%가 비만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은 아이의 신체적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정서적 불안감까지 야기한다.

동아일보는 대한소아과학회와 공동으로 ‘소아비만 탈출하자’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소아비만의 원인과 증상, 부모와 학교가 알아 둬야 할 소아비만 예방법, 전문의 치료법 등을 알아본다.》

서울 초중고생 男18% 女11% 비만

소아 고혈압 30%는 성인까지 고생

낮은 자존감 대인관계에도 악영향

초등학교 4학년 미연(11) 양은 3월 새 학년을 앞두고 신경이 예민해졌다. 새 학급에서 만날 친구들에게서 “뚱보”라는 놀림을 받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우울하다.

봄방학 동안에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내내 집에만 있었다. 키가 135cm인 미연 양은 몸무게가 40kg이 넘는다.

미연이는 “뭘 먹을 때마다 친구들이 ‘그러니 살이 찌지’라며 비웃는 듯하다”면서 “몸무게에 대한 얘기를 들을까봐 그냥 혼자 노는 것이 편하다”고 말했다.

영훈(8) 군은 초등학교 입학 전 건강검진에서 소아당뇨 진단을 받았다. 먹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영훈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상당히 살이 쪘다.

영훈이 엄마는 “3대 독자인 데다 가족 모두가 먹는 것을 즐겨서 안 좋은 줄 알면서도 아이의 무절제한 식욕을 자제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내 소아 비만율은 1970년 후반 4% 정도였으나 2005년 10.2%로 크게 늘었다. 서울 등 대도시 지역의 어린이일수록 비만일 확률은 높다.

대한소아과학회 이동환(순천향대병원 소아과 교수) 전문위원 팀이 2003년에 서울시내 초중고교 남학생 1만8177명과 여학생 1만6678명을 대상으로 비만율을 조사한 결과 남학생은 1988년 6.2%에서 2002년 17.9%로, 여학생은 6.5%에서 10.9%로 늘었다. 각각 3배와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소아 비만은 몸과 마음에 문제를 가져온다. 비만한 소아는 열등감, 우울증, 부정적인 자아관 등에 시달리기 쉽다. 또 성인에게서 볼 수 있는 심혈관질환, 고지혈증, 지방간, 당뇨병 같은 질환이 나타나기도 한다.

신장별 표준체중
신장(cm)남아(kg)여아(kg)
503.463.60
605.955.88
708.678.33
8011.1410.79
9013.4113.22
10015.8515.76
11018.9918.76
12023.2822.72
13028.9528.09
14035.9935.19
15044.1843.86
16053.0652.99
17062.0259.96
소아비만도(%)=(현재 체중(kg)-신장별 표준체중(kg))÷신장별 표준체중(kg)×100. 소아비만도가 20∼30%면 경도 비만, 30∼50%면 중등도 비만, 50% 이상이면 고도비만.

○ 고지혈증 되면 동맥경화 시작될 수도

보통 겉으로 봤을 때 뚱뚱하게 보이는 중등도 이상 비만아는 성인병 위험이 크다.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병 등 성인병이 이미 소아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비만으로 인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져 고지혈증이 되면 어린 나이에도 동맥경화가 시작될 수 있다. 또 비만은 소아·청소년기 고혈압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비만아의 20∼30%에서 고혈압 증상이 나타난다.

이기형 고려대 안암병원 소아과 교수는 “고혈압이 있는 소아·청소년 10명 중 3명은 성인이 돼서도 고혈압을 달고 산다”면서 “비만한 소아·청소년은 고지혈증, 고혈압 등 심혈관계 질환 관리를 일찍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살이 찌면 섭취한 당분을 우리 몸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인슐린에 대한 저항성이 생겨서 성인형 당뇨병이 생길 수 있다. 성인형 당뇨병은 비만도가 높을수록 위험성이 커진다. 성인형 당뇨병을 가진 어린이는 목, 겨드랑이, 사타구니 등이 거뭇거뭇해지고 거칠어지는 증상이 나타나므로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한다.

소아비만은 지방간, 지방간염을 유발하기도 한다. 중등도 이상 비만아를 대상으로 복부 초음파 검사를 해보면 20∼40%가 지방간 증상이 있다. 지방간이 있으면 간세포를 괴사시키거나 염증을 동반해 간염으로 진행될 수 있다.

대한소아과학회 서정완(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위원은 “우리나라 비만아 중 30∼50%는 중등 이상의 비만 상태”라면서 “심혈관계 질환, 당뇨, 지방간 등에 대한 합병증 유무를 검사받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 따돌림 스트레스에 등교 거부-틱 장애도

비만아는 학교, 놀이 공간 등에서 자주 배제되거나 괴롭힘을 당하기 쉽다. 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는 부모나 교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이동환 전문위원은 “주변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비만아도 심리검사를 해보면 열등감, 우울증 등의 감정적 문제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실제 과체중 및 비만아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비만아는 정상아에 비해 자신의 신체적 외모와 특징에 대해 낮게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아의 낮은 자존감은 친구, 이성 관계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등교 거부, 틱 장애, 빈뇨 증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이가 “친구들이 놀린다”는 이유로 학교에 가지 않으려 할 때는 학교에 가라고 무조건 다그칠 것이 아니라 자녀의 스트레스 원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 자녀의 자신감을 길러주고 학교는 흥미로운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비만아는 심한 긴장과 스트레스로 인해 틱 장애를 가진 경우도 많다. 눈썹을 찡그리거나 고개를 갸웃거리고 헛기침, 훌쩍거림 등의 증상을 보인다. 이때는 억지로 동작을 못하게 하거나 교정하려고 하지 말고 틱 장애가 생긴 원인을 찾아야 된다.

비만아는 낮에도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유뇨증이나 소변을 자주 보는 빈뇨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당뇨병으로 인해 빈뇨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당 대사에 대한 정기적인 체크가 필요하고, 유뇨증이나 빈뇨가 지속되면 소아·청소년과를 찾아 전문적인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비만아는 자신감 저하나 심한 스트레스로 발모광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발모광은 심리적 불안감으로 인해 어느 한 곳의 머리카락을 계속해서 뽑는 증상이다.

서정완 전문위원은 “발모광은 피부 감염, 습진, 원형탈모증의 원인이 되기도 하므로 방치하면 안 된다”면서 “비만 치료와 함께 가족이나 학교에서의 문제점을 찾아내 해결해 주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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