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불법복제-짝퉁 단속 ‘완장’ 차고 돈만 뜯는 ‘파파라치 용역업체’ 활개

  • 입력 2007년 4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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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인터넷 공유 사이트에서 영화를 자주 내려받아 보는 서울 H고 3학년 한모(17) 군. 이달 초 저작권 단속업체에서 “저작권을 침해했으니 전화하라”는 e메일을 받았다. 이들은 통화에서 한 군에게 “영화를 불법으로 내려받은 모든 증거를 갖고 있으니,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으려면 합의금으로 30만 원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군은 부모와 상의도 못하고 며칠 동안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에 또 다른 저작권 단속업체의 e메일을 받았다. 그 업체도 “저작권 단속 권한을 위임받았으니 합의금을 내라”고 요구했다. 속을 끓이던 한 군은 파일 공유 사이트인 웹하드 업체에 문의한 결과 한 업체는 등록도 되어 있지 않고, 다른 업체는 영화 배급업체의 단속 권한을 위임받지 않은 가짜 단속 용역업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최근 외국의 명품 업체나 영화배급 업체, 소프트웨어 회사로부터 지식재산권 위반 사례 적발 권한을 위임받지도 않은 불법 단속 용역업체의 직원들이 영화나 음반을 불법으로 내려받거나 복제한 학생 또는 회사원을 협박해서 돈을 뜯는 일이 늘고 있다.

또 단속 용역업체의 일부 직원이 가짜 명품 제작 또는 판매 업체들을 적발해 놓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합의금만 챙기기도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로 불법 복제와 판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면 이들의 불법적인 행태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직원들

서울 동대문에서 7년간 가짜 명품을 팔고 있는 김모(43) 씨는 명절만 되면 ‘가짜 명품’ 단속 용역업체 직원에게 휴가비로 50만∼100만 원을 준다.

이들은 돈을 안 주면 “경찰과 함께 단속을 나온다”며 으름장을 놓기 때문에 ‘가짜 명품’ 판매업자들은 어쩔 수 없이 돈을 줄 수밖에 없다.

김 씨는 “경쟁업자들을 정보원으로 활용해 각 상점의 창고 위치를 훤히 알고 있는데, 우리도 불법적인 일을 하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도 못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들은 ‘가짜 명품’이 적발될 경우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과 함께 단속을 해야 하지만 단독으로 단속에 나서 단속 무마를 조건으로 뇌물을 받거나 합의금을 뜯어내는 등 ‘잿밥’에만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다.

9일 ‘가짜 명품’ 단속 용역업체 직원 3명이 가짜 명품 생산업체를 대상으로 단속 무마 대가로 3, 4년간 수천만 원을 받아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노현경 경위는 “가짜 명품 단속 용역업체들은 통상 인력업체나 시장조사업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며 현재 가짜 명품 단속업체는 수십 곳이 활동 중”이라며 “이들 중 일부는 명품업체와 위탁계약 없이 단속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특허청이 가짜 명품을 적발하는 사람들에게 최고 1000만 원을 주는 포상제를 실시하면서 포상금만 노리는 단속 용역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 일반인에게도 손 뻗쳐

일부 저작권 단속 용역업체들은 주로 불법으로 영화나 음악을 내려받거나 사용하는 일반 이용자 또는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회사를 적발해 합의금의 절반을 나눠 먹는 식으로 수입을 챙긴다. 업계 관계자들은 수십 곳의 저작권 단속 용역업체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업체 중 상당수가 저작권 소유자에게 통지 없이 독단적으로 단속을 실시하거나 저작권을 위임받지도 않았으면서 저작권 조항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협박해 돈을 챙기고 있다는 것.

저작권을 침해한 일반 이용자들은 법적으로 따지기보다는 소송이나 법적 절차가 두려워 합의금을 내고 빨리 끝내기를 원한다.

이로 인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저작권 단속을 제대로 알리고 허위 업체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카페도 생겨났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하홍준 박사는 “단속이 옳은 일인데도 일부 단속 용역업체들 때문에 일반인에게 그릇된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며 “단속 용역업체들이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활동하도록 하고, 설립 자격 등에 엄격한 요건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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