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살인의 추억' 휴대폰으로 본다

  • 입력 2003년 12월 16일 13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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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휴대전화로 본다?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싱글즈'의 권칠인,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시월애'의 이현승 등 감독 20명이 디지털 방식으로 찍은 옴니버스 영화가 모바일로 서비스 된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들이 개교 20주년을 맞아 만든 디지털 옴니버스 프로젝트 '이공(異共)-따로 또 같이'가 그것. 5분 남짓한 길이의 단편 스무 편을 모은 이 옴니버스는 8일부터 매일 네 편씩 SK 텔레콤 '준'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이들 단편에는 극장 스크린에 비하면 '좁쌀' 만한 크기의 휴대전화 액정화면이란 한계를 디지털 영화들이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촬영기법으로는 △카메라를 고정시킨 채 두세 개의 앵글만으로 촬영해 화면 집중도를 높이는 방법 △들고찍기(핸드헬드)로 등장인물의 불안한 심리를 나타내는 방법이 두드러졌다. 이들 영화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해본다.

▽뒤통수 때리기=논리적 이야기 전개보다 SF적이고 엉뚱한 비약과 상상력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SINK & RISE'(감독 봉준호)에선 삶은 달걀이 물에 뜰 것인지 여부를 놓고 가난한 부녀와 매점 주인이 내기를 거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돌연 엄청난 크기의 정체불명 '알'이 한강에 두둥실 떠내려 온다. '이공'(박경희)에선 처음 만나 서먹서먹하던 남녀가 지나가던 도사견에 겁먹은 뒤 서로에게 키스와 애무를 퍼붓는다.

▽엄지손가락을 노려라=문자메시지나 동영상 촬영 등 신세대가 열광하는 대상에 초점을 맞춘다. '스무살의 모바일 퀸'(이영재)에서 문자메시지를 '날리지' 못하면 안달이 나는 '엄지손가락 족' 여자는 엄지손가락을 귀신같이 놀리며 남자의 등을 애무한다. 호러물인 'To the 21st'(장현수)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통해 남자들을 유인해 잔인하게 죽이는 끔찍한 처녀귀신이 등장한다.

▽의도된 유치함 혹은 키치=오버액션 또는 유치하고 부자연스러운 상황으로 유머를 만든다. '비밀과 거짓말'(민규동)에서 예비사위를 '시험 삼아' 유혹하는 예비장모는 3류 에로영화 같은 표정, 체조를 연상케 하는 아크로바틱한 유혹의 몸짓을 보인다. 전쟁을 막기 위해 남자들은 20세까지밖에 살 수 없는 사회를 통해 반전을 풍자한 SF 코믹액션 '이십세법'(조민호)에는 그로테스크한 여성전사들이 나온다. 여자들은 마치 영화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나 '우뢰매'를 연상시키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스무 살이 된 남자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한다.

▽스타 마케팅='바람난 가족'의 황정민(작품명 '이공')과 봉태규('이십세법'), '장화,홍련'의 염정아('20mm 두꺼운'), '플라스틱 트리'의 조은숙('순수')과 김인권('스무 켤레'), '품행제로'의 류승범('비밀과 거짓말'), '접속'의 추상미('이공') 등 화제작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스타들도 등장한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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