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터넷]유해사이트에 노출된 어린이 네티즌

  • 입력 2003년 10월 20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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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화면에 이상한 게 마구 떠요….”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신현경양(10·가명)은 성인 사이트 화면으로 뒤덮인 컴퓨터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도움을 청했다. 엄마 강혜숙씨(39·가명)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친구랑 전화로 통화하다가 채팅 사이트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그런데 채팅 사이트는 안 뜨고 야한 사이트가 나왔어요. 창을 닫아도 자꾸만 생겨요.”

친구가 신양에게 만나자고 한 사이트는 ‘팝플’(www.popple.co.kr). 요즘 초등학생 사이에서 인기 높은 아바타 채팅 사이트다. 문제의 발단은 신양이 ‘팝플’을 ‘파플’로 잘못 알아들은 것. 초등학생들은 영어 자판에 익숙지 않아 한글 키워드 방식을 많이 사용한다. 성인 사이트 업자들이 이를 악용해 비슷한 한글 발음의 키워드를 등록해 놓고 성인 사이트로 연결한 것이다.

▽XP 설치 후 찾아온 불청객, 메신저 스팸=신양의 아버지 신동석씨(42·가명)는 최근 컴퓨터 운영체제를 윈도 98에서 엑스피(XP)로 업그레이드했다.

XP를 설치한 이후 신씨에겐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겼다. 시도 때도 없이 바탕화면에 뜨는 메신저 스팸이 바로 그것. 내용이 성인광고 등 대부분 불건전한 것이어서 행여 딸이 볼세라 신씨는 늘 걱정스럽다. 메신저 스팸을 처음 대하는 이용자는 이 광고가 MSN 같은 인스턴트 메신저를 통해 들어오는 것으로 혼동하곤 한다.

메신저 스팸은 송신자가 컴퓨터의 아이피(IP)주소를 무작위로 추출, 윈도XP와 윈도2000에 들어있는 팝업기능을 이용해 광고메시지를 대량 발송하는 것이다. 이 서비스는 원래 MS가 시스템 운영자에게 시스템 이상 등을 알릴 수 있도록 개발한 것이나 이를 불법 광고업자들이 악용한 것.

윈도에서 이 기능을 정지하려면 ‘시작→제어판→성능 및 유지 관리→관리 도구→서비스’를 차례로 클릭한 후, ‘서비스’ 중에서 ‘메신저서비스’의 ‘속성’을 변경해주면 된다. 속성 대화상자에서 ‘중지’를 누르고 시작 유형을 ‘사용 안함’으로 설정한 후 확인 단추를 누르면 더 이상 메신저 스팸이 들어오지 않는다. 비씨파크(bcpark.net)에선 이 기능을 자동화시킨 ‘메신저 스팸방지 유틸리티’를 무료 배포 중.

▽성인 콘텐츠 권하는 포털 사이트=신양은 요즘 어린이 포털 사이트보다 일반 포털 사이트를 자주 가는 편이다. 숙제 때문에 지식검색을 많이 활용하는데 일반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지식이 어린이 것보다 풍부하기 때문.

신양은 최근 포털업체 1, 2위를 다투는 모사이트의 만화 코너에 들어갔다가 놀라서 나와 버렸다. ‘금주의 인기만화’ 1위를 클릭했는데 난생 처음 보는 ‘어른만화’가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이 만화는 줄거리 설명부터 초등학생이 보기엔 부적절했다.

‘사내를 유혹하는 여인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항주의 한구석. 숨 가쁜 듯한 여인의 신음이 이어진다.…’

공짜로 제공되는 맛보기판은 첫 페이지부터 ‘오빠 끝내줄게’ 같은 낯 뜨거운 대화로 가득 채워져 있다. 문제는 초등생인 신양이 맛보기판을 열어보기까지 어떠한 성인 인증도 거치지 않았다는 점.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 역시 어린이들이 얼떨결에 성인 콘텐츠를 접하는 통로다. 이 사이트 게시판에 들어가면 추천검색어로 ‘S양’ ‘성인’이란 단어가 버젓이 올라와 있다. 어린이들이 호기심에 ‘성인’이란 단어를 누른다면 영락없이 성인 콘텐츠에 노출된다.

▽나도 모르게 설치돼 개인정보를 빼내가는 스파이웨어=무료 소프트웨어를 내려받을 때 자동으로 설치돼 개인정보를 빼가는 ‘스파이웨어’ 프로그램도 문제다. 어린이의 경우 무료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때 약관에 기재돼 있는 스파이웨어 설치 부분을 읽지 않고 그냥 동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개인정보 분쟁조정위원회 이창범 사무국장은 “접수된 신고 건수 중에는 법정 대리인의 동의가 없는 어린이 개인정보 수집도 다수 포함돼 있다”며 부모가 자녀의 개인정보 관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권혜진기자 hjkwon@donga.com

▼학부모57% “내아이 음란스팸 접할 것”▼

초중학생의 학부모 10명 가운데 5명 이상이 자신의 자녀가 인터넷을 통해 음란한 내용의 스팸메일을 받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초중학생 학부모의 10%는 자신의 자녀가 음란성 e메일을 열어보는 걸 목격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내용은 한국통신문화재단이 최근 서울 은평지역 초중학생 학부모 300명(평균 연령 39세)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조사대상 학부모의 57%가 ‘자녀가 음란성 스팸메일을 접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응답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스팸메일 노출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드러냈다.

학부모들은 79%가 ‘e메일을 할 줄 안다’고 밝혀 인터넷 활용에 비교적 익숙한 것으로 파악됐지만 ‘평소 자녀와 e메일을 주고받는다’는 응답자는 42%에 불과했다.

‘스팸메일의 심각성에 대해 자녀와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는 응답자도 64%로 나타나 가정 내 인터넷 활용 교육은 물론 부모와 자녀간의 의사소통이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 주일에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몇 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도 평균 6회로 나타나 대부분의 가정에서 가족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함을 드러냈다.

한국통신문화재단은 이에 대해 “가족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야 불건전한 사이버 문화에서 자녀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한국통신문화재단은 10월 셋째주 학부모 스팸메일 추방 순회교육을 21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윤중중학교 강당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02-325-8559)는 22일 대전 관저동 봉우중학교에서 건강한 인터넷 캠페인 학부모 순회강연을 갖는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유해정보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1. 온라인에서 어떤 곳들에 갈 수 있는지, 만약 자녀가 부적절한 사이트에 접속한 경우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가족의 규칙’을 만들라.

2. 컴퓨터를 자녀의 방이 아닌 가족 공동공간에 두고 정기적으로 작업을 확인하라.

3. 음란물을 접촉한 아이에게 무조건 꾸짖거나 야단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아이에게 음란물의 환상과 왜곡을 설명해 주고 다음의 대처요령을 가르쳐 줘라.

- 음란사이트에 대해 부모에게 이야기하도록 한다.

- 부모의 허락 없이 유료사이트에 가입하지 않도록 한다.

- 음란물 판매메일을 받았을 경우 부모에게 알리도록 한다.

4. 자녀와 상의하여 인터넷 음란물 차단프로그램을 설치한다.

<학부모정보감시단(http://www.cyberparents.or.kr)의 자녀 지도요령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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