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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4월 9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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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는 20여종에 달하지만, 아프리카 일부를 제외하고 ‘오리자 사티바’ 한 종만을 재배하고 있다. 온대지방의 ‘자포니카’와 아열대의 ‘인디카’는 사티바의 대표적 아종(亞種)이다.
두 아종은 세계 인구의 절반이 주식으로 먹을 만큼 경제적 가치가 크다. 쌀알이 둥글고 끈적한 자포니카는 한국과 일본인이 즐겨 먹고, 길쭉하고 찰기가 적은 인디카는 중국 동남아 인도인의 주식이다.
한국 등 10개국은 일본의 주도 아래 98년 국제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자포니카의 게놈 해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신젠타가 ‘자포니카’의 유전자 지도를 먼저 손에 넣는 바람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베이징게놈연구소가 인디카의 염기서열을 ‘진뱅크’에 공개한 것과 달리, 신젠타는 자포니카의 염기서열을 자사의 웹사이트에 공개하되 학술적 목적으로만 쓰도록 사용 자격을 극히 제한했다. 노벨상 수상자 등 20명의 저명한 유전학자들은 신젠타가 사실상 정보 접근을 막고 신젠타에 협력하는 과학자에게만 정보를 제공하려 한다며 ‘사이언스’에 비판의 글을 보내기도 했다.
스위스 바젤에 본부를 둔 신젠타는 노바티스와 아스트라제카의 농업부문을 합병해 탄생한 농약 분야 세계 1위, 종묘 분야 세계 3위의 다국적 기업으로, 한국을 포함해 2만3000여명에 달하는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신젠타는 동양화학 농약사업부과 서울종묘를 인수해 국내 농업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자포니카의 게놈지도를 손에 넣음으로써 신젠타의 신품종, 신농약 개발은 한층 가속도가 붙을 게 분명하다. 이미 신젠타는 벼를 유전자 조작해 쌀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 A를 보강한 ‘황금쌀’의 특허를 갖고 있다. 벼 게놈지도는 ‘기능성 쌀’ ‘제초제 병충해 저항성 벼’ ‘다수확 품종’ ‘맛있는 쌀’의 유전자 특허 제조기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자포니카는 인도 일대가 원산지이지만 3000여년 전에 한반도에 들어와 우리 농민들이 1백 세대에 걸쳐 땀흘려 육종한 것이다. 또한 2000년 전쯤에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일본에 볍씨를 논농사와 함께 전파했다. 한국은 자포니카의 종주국인 셈이다.
오랜 굶주림의 역사에서 밥은 우리에게 곧 하늘이요, 목숨이고 혼이었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의 벼 게놈 정보 독점과 생명 특허 공세에 밀려 몇 년 뒤에는 밥을 먹는 데도 로얄티를 지불해야 할지 모른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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