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난민' 속출… 자금난 몰린 벤처기업들 감원바람

  • 입력 2000년 11월 27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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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어려워) 월급을 못줄 형편이니 자발적으로 나가달라.”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L사장은 이달 중순 40여명의 직원들 앞에서 ‘힘든’ 선언을 했다.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투자유치가 점점 어려워지고 계획한 대로 사업이 돌아가지 않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장기전’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것. 한푼이 아쉬운 시점이라 인건비라도 줄이고 싶었다.

사장의 비장한 선언을 접한 직원들은 초겨울 날씨만큼이나 차가운 싸늘함을 느꼈다. 그리고 하나둘씩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L씨(29)도 퇴사 대열에 끼었다. 처음에는 ‘어디 갈 곳이 없겠느냐’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경력이 애매한 탓에 번번이 일자리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재취업을 위해 정보기술(IT)전문학원에 등록, 개인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L씨는 “답답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며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벤처기업들이 자금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비틀거리고 있다. 임대료가 싼 지역으로 사무실을 옮기거나 마케팅활동을 접는 등 비용을 줄이고 있지만 이것으로는 역부족. 이에따라 ‘뼈를 깎는 심정으로’ 감원에 나서는 곳이 적지않아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50%까지 직원수를 줄이고 있다. 서울벤처밸리에 ‘IT 난민’이 서서히 생겨나고 있다.

헤드헌팅업체에도 이달들어 구인의뢰보다 구직의뢰가 늘어나는 역전현상이 시작됐다. IT난민의 증가도 원인이지만 벤처에 몸담고 있으면서 다른 직장을 알아보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 또다른 이유. 언젠가는 자신도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특별한 기술이나 탄탄한 경력이 없을 경우 재취업도 쉽지 않다는 점. 엔터테인먼트회사에서 일하다 감원당한 N씨(28)는 2년 가량의 자바프로그래머 경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직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굴지의 대기업에서 15년간 근무한 Y씨(40)도 전자상거래사이트의 이사를 지내다 직원 30%와 더불어 일자리를 잃은 뒤 갈수록 희망연봉을 낮춰 부르고 있다.

인크루트의 박주영 컨설턴트는 “대다수 구인기업들이 팀장급 이상의 경력자나 숙련된 엔지니어를 찾고 있어 구직자의 경력이 이에 미치지 못할 경우 장기간 직업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같은 IT실업은 이제 초기로 내년 상반기가 되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성동기기자>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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