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에너지'가 우주를 지배한다

  • 입력 2000년 11월 22일 18시 56분


우주를 지배하는 힘은 만유인력이다. 아이작 뉴턴 이래 과학자들은 행성, 별, 은하의 운동을 서로 끌어당기는 힘인 만유인력으로 설명해 왔다.

하지만 인력과는 반대로 서로 밀어내는 척력이 우주에 훨씬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관측 자료 분석 결과가 올해 잇따라 나와 학계가 술렁이고 있다.

척력을 일으키는 주인공은 ‘진공에너지’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진공에너지는 우주 전체 에너지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이 에너지로 인해 우주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우주에너지 3분의 2차지▼

지금까지 나온 발표를 종합해보면 우주의 전체 에너지 중 물질은 35% 정도뿐이고 나머지 65%를 진공에너지가 차지한다. 이는 우주 전체의 물질 가운데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은 10% 미만이고 나머지 90% 이상은 우리가 모르는 ‘암흑물질’이라고 여겨왔던 이전의 우주론을 뒤엎는 결과다.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 입자천체물리센터 앤드류 재프 교수가 이끄는 42명의 국제공동연구팀은 우주탄생 초기 대폭발의 흔적인 우주배경복사와 아주 멀리 떨어진 초신성을 정밀하게 관측한 결과를 바탕으로 우주는 평탄하고 진공에너지가 물질보다 우세하다고 밝힌 논문을 7월 말‘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제출했다. 이 논문은 9월과 10월 국내에서 열렸던 ‘코스모 2000’국제학술대회와 한국천문학회에서도 뜨거운 관심거리가 됐다.

▼기존학설 뒤엎어 '학계 술렁'▼

한국천문학회에서 이 분석결과를 소개했던 서울대 박창범 교수(지구환경과학부 천문학전공)는 “10년 전부터 우주 거대구조의 관측 결과를 통해 진공에너지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는데 최근 초신성과 우주배경복사에 대한 정밀한 관측 결과가 이를 재확인해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주는 현재 바닥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닥상태보다 더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이 차이가 진공에너지다. 진공에너지의 정체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주 곳곳에 균일하게 퍼져 있다고 예상된다. 특이하게도 우주에 존재하는 진공에너지는 공간이 늘어날수록 많아진다. 우주는 팽창하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더 늘어나는 셈이다.

‘코스모 2000’ 행사를 주관했던 고등과학원 김정욱 원장은 “진공에너지는 에너지보존법칙이 적용되지 않고,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표현대로 ‘공짜 점심’처럼 계속 생겨나는 불가사의한 존재”라고 강조했다.

더욱이 진공에너지는 만유인력에 반대되는 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현재 일어나고 있는 우주팽창은 이전보다 더 가속되고 진공에너지가 늘어날수록 우주는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게 된다. 마치 활활 타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 우주의 미래는 우주에 있는 물질의 밀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예측됐다. 우주의 물질밀도가 임계밀도보다 작으면 우주는 앞으로도 계속 팽창하는 반면 이보다 크면 현재의 팽창이 언젠가 멈추고 다시 수축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주가 팽창할지 수축할지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는 평탄한 우주에 진공에너지가 우세하기 때문에 우주의 운명은 계속 팽창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주는 현재 급팽창 단계에 접어들어 앞으로 150억 년 뒤에는 지금보다 1017배나 커지게 된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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