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의약분업]美 처방-非처방약 분류 시장에 맡겨

  • 입력 2000년 4월 5일 19시 54분


동네병원들이 이번 집단휴진의 명분 중 하나로 내세운 것이 의약품 분류 문제다.

즉 소비자들이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의 비율을 줄이고 미국이나 유럽처럼 슈퍼마켓 판매를 허용하되 의사의 처방전이 요구되는 전문의약품의 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라는 요구다. 국민의 건강 보호와 유난히 약을 좋아하는 국민성을 고치는 차원에서도 일리있는 주장이다.

▼소독약 생활용품 포함 非처방약 품목 무려 30만개▼

우리가 전문 및 일반의약품으로 구분하는 것을 미국에서는 처방약 및 비처방약(OTC)으로 부른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처방약과 OTC의 분류는 정부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맡겨져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 약품정보과에 근무하는 메리 크렘즈너는 “미국에서는 신약 개발이 활발하고 특허가 철저히 보호되고 있기 때문에 특허기간이 끝나고 선점효과가 줄어들게 되면 제약회사가 처방약을 OTC로 전환 요청을 한다”며 “OTC로의 전환은 FDA가 정한 제조 판매 기준을 준수하기만 하면 간단한 과정을 거쳐 승인된다”고 설명했다.

OTC로의 전환 기준은 부작용과 자기진단의 용이성 여부. 예컨대 부작용이 심각하거나 고혈압처럼 자기진단이 어려운 질병에는 OTC로 전환되지 않는다. 그러나 제약회사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OTC로 전환되지 않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런 기준에 따른 OTC는 무려 30만개 품목으로 처방약 1만2000개 품목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미국의 OTC에는 우리가 의약부외품으로 분류하는 소독약 등 생활용품이 모두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의약품 60%, 전문의약품 40%로 일반의약품 비율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7월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전문의약품 60%, 일반의약품 40%로 이 비율이 뒤바뀌게 된다.

이를 시장규모별 의약품 분류비율로 계산하면 일반의약품 비율이 18%선으로 독일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미국에서 약을 함부로 살 수 없는 이유는 의사의 처방전이 요구되는 것 외에 약값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비싼 탓도 있다. 볼티모어의 스프링글로브병원센터에서 근무하는 약사 소정화씨는 “미국에서는 제약회사들이 신약에 대한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도록 충분한 약값을 보장하기 때문에 약값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2배가 넘는다”며 “일부 환자들은 국경을 넘어 캐나다 멕시코에까지 가서 약을 사올 정도”라고 말했다.

의약분업이 확실한 미국에서도 최근 들어 보험회사의 전횡 때문에 환자들의 치료받을 권리가 제약되는 것은 물론 의사들의 진료권도 흔들리는 추세다. 미국 2억7000여만명의 인구중 1억여명이 가입한 사보험(HMO)에서 보험회사 지정병원에서만 보험혜택을 주도록 하는데다 약을 구입할 때도 일부는 본인이 부담토록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최근에는 응급환자의 경우 보험회사의 허가 없이도 의사의 처방전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환자권리장전이 제정되기도 했다.

교포 의사 서진우박사는 “종전에는 시간당 2,3명의 환자를 봤지만 보험회사의 규제가 심한 요즘에는 수입이 줄어 시간당 3,4명의 환자를 본다”며 “한국에서도 충실한 진료를 하게 하려면 의사가 ‘비즈니스’에 신경쓰지 않도록 적정한 수익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처벌 무겁고 소송도 우려 약사 임의조제는 꿈도 안꿔▼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이대섭씨는 “한국에서 의사들이 약사의 임의조제를 우려한다는데 일단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이같은 우려는 ‘기우’가 될 것”이라며 “임의조제에 대한 처벌이 무거운데다 약화사고 우려도 있어 약사가 임의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번 약화사고가 일어나면 환자로부터 곧바로 소송을 당하게 된다.

전국민의료보험이 실시되는 유럽이나 캐나다 등에서는 약사가 임의조제할 경우 국가가 보험처리를 해주지 않으므로 굳이 약사 감시를 하지 않아도 어느 약사라도 손해를 보며 임의조제를 하지는 않는다.

<워싱턴〓정성희기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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