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라이벌」삼성-LG 「디지털경영」으로 체질바꾸기

  • 입력 1999년 7월 15일 18시 44분


삼성전자 정호진과장(경영혁신팀)의 지방 출장중 경험. 열차 옆자리에 함께 앉아있던 임원이 노트북을 꺼내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임원은 “결재서류를 E메일로 받았는 데 시간이 없어 지금 살펴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들 노트북을 펴놓고 회의 준비에 한창이었다. 정과장은 “쉬는 시간에 MP3 플레이어를 틀어놓고 자신이 다운로드 한 음악 파일을 듣고 있는 임원도 있었다”고 말했다.

‘디지털경영’이 21세기 기업의 생존 전략으로 떠오르면서 기업 문화도 디지털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연초부터 경쟁적으로 디지털경영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며 체질 바꾸기에 주력하고 있다.

▽달라진 사무실 모습〓LG전자 세탁기연구실에선 팩스가 사라졌다. 연구원마다 각자 자신의 PC에 개별적으로 내선 번호를 갖고 팩스나 E메일을 받고 보낸다. 팩스 종이를 포함한 모든 종이가 추방된 것.

‘팩스 없애기’ 운동은 세탁기사업부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세탁기연구실은 이밖에도 문서 데이터베이스(DB)화 작업을 통해 문서를 보관하는 공간을 50%나 줄였다. 또 자체적으로 ‘하나로’라는 문서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한 회의가 확산되고 있다. 기흥 사업장 미디어팀의 경우 연구실과 사무실, 공장이 반경 1㎞ 거리에 퍼져있다. 걸어서는 한바퀴 도는 데 1시간 가까이 걸릴 정도.

미디어팀은 사내에서 제일 먼저 홈페이지 회의를 도입했다. 그 결과 사람이 직접 모이는 회의가 월 20회에서 3회로 줄었다. 임원―그룹장―파트장 등 여러 단계를 거치던 의사소통 단계도 홈페이지를 통해 1단계로 줄였다. 덕분에 업무 속도는 50% 이상 빨라졌다.

▽정부 역할도 중요〓14일 개최된 LG전자의 디지털경영 선포식은 국내 4개 사업장을 화상시스템으로 연결해 진행됐다.

선포식 전날밤 정보화 담당 임원인 유영민상무는 밤새 ‘제발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올려야했다. 화상시스템이 전화선의 일종인 PC넷으로 연결됐는데 비가 오면 연결이 불안해지기 때문. 국가 전체적으로 광통신망이 깔려 있다면 생각조차 못할 일이다. 국내외 사업장 전체로 디지털경영을 확산시키려면 이에 걸맞은 인프라 구축은 필수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경영’만 놓고 보면 국내에는 마땅히 주무부처라고 내세울 곳이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 업무의 중간적 성격을 띠고 있어 디지털경영은 행정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다. 미국이 정부주도아래 혁명적으로 디지털 경영을 확산시키고 있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디지털 경영은 생존전략〓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회장은 21세기 기업 의사 결정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디지털 신경체계’를 제시했다. 인간의 신경망처럼 기업내에 디지털화된 정보처리 신경망을 구축하자는 것. 사내외의 무수한 정보를 통합 처리해 업무 속도를 높이자는 뜻이다.

〈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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