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대담] 「세계를 터는 강도」/김현-이인식

  • 입력 1999년 4월 16일 19시 58분


19세기말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한 세기 후 인류는 전 지구적인 신(神)의 재림을 목격한다. 빌 게이츠가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MS). 서울 뉴욕 파리 북경 모스크바 나이로비…. 민족 국가 언어 체제를 초월해 사람들은 이제 똑같은 ‘창(windows)’ 앞에 앉아 있다.

그러나 프랑스 정보과학자 로베르타 디 코스모 교수와 과학저널리스트 도미니크 노라는 MS를 신이라 부르지 않는다. 독점체제로 지구를 수탈하는 사악한 집단으로 여긴다. 그들의 공저는 ‘세계를 터는 강도’. 저자들은 프랑스와 유럽의 컴퓨터이용자들에게 ‘반(反)MS 전선’을 요구한다.

과연 이 책이 던진 비판은 적절한가? 과학평론가 이인식씨와 프로그래머이자 철학자인 김현씨가 한국현실에 비춰 갑론을박했다.

▼김현<한국학데이터베이스연구소장·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조선왕조실록 CD롬 개발자>

▼이인식<서울대 전자공학과 졸· 과학문화연구소장· 과학평론가 ·저서 「미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이인식〓이 책은 위험하다. 우리 결점에 대한 반성은 없이 국수주의만 조장할 수 있다. 저자들이 지적한 대로 MS가 기술력이 떨어지는데도 경쟁사들을 제치고 시장을 석권한 노하우는 한국 벤처기업들이 오히려 배워야 할 부분이다. 이 책은 MS를 강도로 몰면서 탁월한 마케팅 능력에 대한 설명은 배제하는 오류를 범했다.

△김현〓그러나 ‘MS 아닌 대안을 찾겠다’는 시도를 보여준 것은 의미있지 않은가. MS가 시장을 독점하는 가장 큰 폐해는 로열티를 얼마나 무느냐하는 돈의 문제가 아니다. MS외에는 아무런 해결책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더 심각하다. 그런 점에서 공공의 이해를 도모하는 ‘반(反)MS 사이버시민운동’은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

△이〓시민운동은 이상론일 뿐이다. 저자들은 ‘리눅스’로 대표되는 프리소프트웨어(free software, 대중에게 무료로 제공하기 위해 다수의 프로그래머들이 집단으로 만든 프로그램)에 희망을 걸지만 애프터서비스나 업그레이드 등이 보장되지 않는 불편을 감수하면서 운동에 참여할 사용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김〓MS저항에 나설 주체가 일반 PC사용자가 아니라는데 동의한다. 저자들이 지적했듯이 대학과 연구소 등에서 정보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적인 대중’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이 세계적인 프리소프트웨어의 경향과 표준을 꾸준히 연구하고 자신들의 창안도 보태면서 장기적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MS에 저항하느라 쓸데없는 곳에 힘을 낭비하게 되지는 않을까. MS의 소프트웨어는 운영체제(OS)일 뿐이다. 한국기업들이 응용소프트웨어를 사는데 들이는 막대한 비용을 생각한다면 MS의 값싼 운영체제는 사다 쓰고, 고가의 응용소프트웨어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게 시장논리에 맞다고 생각한다.

△김〓MS는 대항세력이 생기지 않는 한 독점적 이익을 조금도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민족주의나 윤리운동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도 다양한 대안을 모색해 MS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

▼「세계를 터는 강도」 로베르타 디 코스모 외 공저, 조성애 옮김

전반부는 MS독점체제의 위험성을 해부. MS의 개인생활 통제 가능성에 비하면 조지 오웰이 그린 ‘빅 브라더’는 순진한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후반부는 MS의 전 지구적 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리눅스’(91년에 만들어진 운영체제) 등의 프리소프트웨어 활성화 운동을 제안. 영림카디널 204쪽 6,800원

〈정리〓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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