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의 對話]“전사자를 전사자라 못 부르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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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국회부의장

15일 오후 2차 연평해전 당시 참수리호가 전시된 경기도 평택 해군2함대에서 심재철(왼쪽) 국회 부의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평택=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15일 오후 2차 연평해전 당시 참수리호가 전시된 경기도 평택 해군2함대에서 심재철(왼쪽) 국회 부의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평택=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미 해군 군견 ‘딩고’(2003∼2017)를 기리며/‘…우리는 함께 어두운 밤을 지켰습니다…’>
 
이달 초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미 해군 폭발물 탐지견 ‘딩고’의 장례식이 열렸다. 딩고는 이라크, 아프리카 근무를 포함해 10여 년간 50여 회의 대통령 경호작전에 참여했으며 은퇴 후 자연사했다. 의장대가 도열한 장례식에서는 21발의 예포가 발사됐고, 곱게 접은 성조기가 딩고의 조련사에게 정중히 전달됐다(아래쪽 사진). 딩고의 유해는 죽은 군견들을 위한 기념비 아래 매장됐다. 》
 

이진구 기자
이진구 기자
2002년 6월 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북한 초계정이 우리 해군 고속정(참수리 357호)을 기습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참수리호 정장 윤영하 소령(추서 후 계급) 등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을 입었다. 참수리호는 예인 도중 침몰했다. 당시 서해교전으로 불리던 이 전투는 2008년 4월에야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되고, NLL을 수호한 승전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산화한 6명은 ‘전사자’가 아닌 ‘순직자’ 상태. 이들을 ‘순직자’가 아닌 ‘전사자’로 예우하자는 특별법(제2연평해전 전투수행자에 대한 명예선양 및 보상에 대한 특별법)이 19, 20대 국회에 연이어 발의됐지만 아무 관심도 못 받고 잠자고 있는 상태다.

―19, 20대 국회에서 연이어 특별법을 발의한 이유는….

“2015년 초 우연한 기회에 제2연평해전에서 산화한 장병들이 당시 13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전사자가 아니라 순직자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왜 그런지 알아보다가 기가 막혔다. 2015년 6월 19대 국회에서 발의했는데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돼, 지난해 8월 20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했다.”

―기가 막히다니?


“제2연평해전이 발발한 2002년까지는 ‘전사’와 ‘순직’이 구별되지 않았다. 단순히 ‘공무, 공무 외 사망’으로만 구별해 순직으로 처리한 것이다. 하지만 제2연평해전을 계기로 전사와 순직을 같이 취급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일었고, 2004년 법이 개정돼 ‘전사’ 규정이 마련됐다. 그런데 정작 법 개정의 계기가 된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에게는 소급 적용이 안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말로는 ‘전사자’라고 하지만 법적으로 윤영하 소령 등 사망한 6명은 아직도 전사자가 아닌 순직자다. 국가 보상도 순직에 준해 지급됐고….”

―순직과 전사의 차이가 큰가.

“‘전사’ 규정이 마련되기 전에는 ‘본인 보수 월액의 36배’가 지급됐다. 하지만 규정 마련 이후 조금씩 올라 2015년 ‘공무원 전체의 소득월액의 평균액의 57배 상당액’으로 상향됐다. 하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명예다. 나라를 위해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싸우다 전사한 그들을 단순히 일하다 죽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앙꼬 없는 찐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제2연평해전 이후 해전의 당사자인 평택 해군2함대에는 으리으리한 안보전시관(배 뒷건물)이 생기고, 추도식은 매년 국가 주도로 거행되지만 정작 꽃다운 젊음을 산화한 이들은 15년이 지나도록 전사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심재철 국회부의장(왼쪽)은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평택=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앙꼬 없는 찐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제2연평해전 이후 해전의 당사자인 평택 해군2함대에는 으리으리한 안보전시관(배 뒷건물)이 생기고, 추도식은 매년 국가 주도로 거행되지만 정작 꽃다운 젊음을 산화한 이들은 15년이 지나도록 전사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심재철 국회부의장(왼쪽)은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평택=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특별법의 내용은….

“현재 전사자에게 적용되는 규정을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에게도 소급 적용해 주자는 것이다. 여기에 이들의 명예선양 및 보상을 위해 위원회를 설치하고, 전사·사상자에 대한 추모행사 개최, 위령탑 건립 등 명예선양사업도 할 수 있게 했다. 당시 부상을 입은 장병에 대해서는 1인당 최대 5000만 원 범위에서 장해등급에 따른 보상금을 지급하는 내용도 담았다. 법적 지위는 물론이고 대우도 진짜 전사자로 예우하자는 것이다.”

―19대 국회에서 통과가 안 된 이유는 무엇인가.

“국방부에서 특별법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에게 소급 적용을 해줄 경우 6·25전쟁 이후 북한 도발로 전사·사상자가 발생한 모든 사안에 대해서도 유가족들이 특별법을 요구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사안별로 모두 추가 소급입법을 요구할 경우 재원 마련 문제도 있다고 하고….”

―형평성이 이유라면 결국 하지 말자는 것 아닌가.

“6·25전쟁 이후 사상자가 발생한 모든 사안을 일괄적으로 소급 적용하는 법을 만들기는 힘들다. 제2연평해전처럼 개별 사안별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일부 다른 사건의 유가족들이 특별법을 요구할 수 있겠지만 말처럼 휴전 후 모든 사건에 대해 특별법 제정 요청이 쇄도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본다. 한꺼번에 동시에 발생하지도 않을 테고…. 기본적으로는 옛날에는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이제는 그렇지 않으니까, 전부 다 해줄 순 없어도 하나하나 해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비용이 많이 드나.

“휴전 이후 북한 도발로 인한 사망자가 224명, 부상 244명, 납치된 사람이 25명이라고 한다. 사망자만 따지면 현재 전사자 보상금이 1인당 2억7000만 원 정도라 600억 원 정도가 드는 셈이다. 개별 사업비로는 적은 돈이 아니지만 나라를 위해 전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장기적으론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물론 부상자와 다른 사업비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더 들겠지만 점차 소급 적용을 해나가야 한다고 본다.”

―제2연평해전 특별법에는 비용이 얼마나 드나.

“지난해 국회 예산정책처가 추산했는데 전사자와 부상자 보상비가 16억3000만 원 정도, 위원회 설치와 명예선양사업에 향후 5년간(2018∼2022년) 3억4000만 원 정도 등 19억7000만 원 정도가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소의 변동은 있겠지만 크게 바뀌진 않을 것 같다. 국가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장병들에게 지급되는 규모로는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다. 국가의 품위를 지키기 위한 최소 비용이다.”

―더 무리해도 의원들의 성화에 통과되는 법, 예산도 수두룩하다. 특히 특별법을 낼 당시 소속 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집권 여당이었고, 툭하면 안보제일 정당이라면서 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나.


“(여야 모두) 관심들이 없다.”

―너무 솔직하게 답하니 질문한 사람이 되레 민망하다.

“그거야 너무 뻔하니까…. 여야 어느 한쪽에서 반대도 하고, 싸우기도 해야 쟁점이 되고 주목을 받아서 결론이 나는데 서로 반대할 이유가 없으니까 아이러니하게 내버려진 거지. 여기에 국방부가 형평성 문제 등 이러저러해서 어렵다고 하니 일견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그럽시다’ 하며 치운 것이고…. 관련자도 많고, 이쪽저쪽에서 시끌벅적해야 뭐가 되더라도 되는데…. 핫이슈가 안 되다 보니…, 최순실 사태, 대통령 탄핵 등 정치 상황도 엄청난 일들이 계속 벌어졌고…. 우리가 천안함 폭침에 쏟은 관심과 민주당이 세월호에 쏟은 관심 정도를 보였다면 이 법안이 표류하진 않았을 텐데….”

―유가족들은 가만히 있었나. 집단 의사를 표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군인 가족들이니까…. 군인 가족들은 일반 민간인 유가족처럼 행동하지 못한다. 조심스러운 것이지. 다른 사건의 유가족처럼 끝까지 갈 데까지 가보자는 등, 단식투쟁을 한다는 등, 집회를 한다는 등 그런 행동은 못 한다. 설사 한다 해도 가족이 몇십 명인데 지속적으로 하기도 힘들고….”

―특별법 통과도 중요하지만 같은 전투가 정부에 따라 다르게 취급받는 것은 문제 아닌가.

“제2연평해전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까지는 그냥 서해교전으로 불렸다. 당시 해군은 내부적으로는 승전이라고 했지만 대외적으론 이를 말하지 못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때에야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되고, 떳떳하게 대내외적으로 승전으로 평가한 것이다. 이때부터 추모식도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국가보훈처로 옮겨 정부 기념행사로 승격됐고, 2012년 10주년 행사에 군 통수권자가 처음으로 참석했다. 누가 집권하든 나라를 위한 희생이 다르게 대접받아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당시 해전의 시작과 끝, 제기된 의혹, 정부 대처 등 모든 것의 진상을 기록한 백서가 만들어져야 한다. 당시 국방부 차원의 간단한 보고서는 있지만 아직까지 이런 종합적인 백서는 없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예우가 박한 것 같다.

“우리가 그게 많이 약하다. 미국을 보면 그런 게 차이가 나지. 베테랑에 대한 존경…. 나라를 지킨 분들에 대한 존경과 그들을 기리는 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래야 누구든지 아낌없이 조국을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고…. 29일이 제2연평해전 15주기다. 이 특별법을 계기로 안보는 물론이고 여야가 협치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평택 해군2함대#제2연평해전#군견 딩고#제2연평해전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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