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초등수학 80점, 아빠와 엄마의 반응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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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초등학교 2학년 은정이가 얼마 전 본 수학시험지를 받아왔다. 점수는 80점. 엄마는 시험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매번 100점을 맞던 아이가 무려 5개나 틀린 것이다. 틀린 문제를 보니 어이가 없다. 갑자기 걱정과 불안이 엄습해왔다. 은정 아빠에게 이 사태에 대해 심각하게 말했다. “여보, 우리 은정이 이러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 되는 거 아니야? 무슨 대책을 세워야겠어.” 그런데 은정 아빠는 대책은커녕 은정 엄마를 탓한다. “오버 좀 하지 마. 80점이면 잘했네. 초등학교 때는 그냥 놀아도 돼. 내 친구 광철이 알지? 걔가 초등학교 때 꼴찌였거든. 그런데 지금 변호사야.”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아빠는 아이의 초등학교 성적에 아주 많이 너그럽다. 그래서 아이 공부를 위해서 뭐든 시키려고 하는 아내가 종종 극성바가지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무슨 초등학생을 이 시간까지 공부를 시켜? 애를 잡아요, 잡아”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아내 입장에서는 이런 반응이 굉장히 섭섭하다. 어쩌면 이토록 무관심할까 싶다.

엄마의 불안은 유전자에 코딩된 면이 많다. 어릴 때는 아이가 잘 자라지 못할까 봐 불안하고, 좀 자라면 아이가 뒤처질까 봐 불안하다. 그런데 요즘 초등학생들은 정말 공부를 잘한다. 반 평균이 90점에 가까워 80점이면 못하는 축에 속할 때도 진짜 있다. 아이가 뒤처지면 어쩌지 내내 불안하던 엄마는 어떻게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에 비해 아빠들은 지나친 낙관주의로 조언한다. 이런 태도로는 아내의 불안을 진정시킬 수 없다. 남편들이 극성이라고 생각하는 아내의 행동도 멈추게 할 수 없다. 그런데 사실 지나친 낙관주의는 불안의 다른 얼굴이다. 어떤 확신이나 대책 없이 그저 “크면 다 잘될 거야” 하는 것은 현실을 회피하고 문제를 덮어버리려고 하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갖는 아이 교육에 대한 불안은 현재보다 5∼10년 앞선 것이어서 솔직히 지나친 면이 많긴 하다. 반면, 아빠들은 20∼30년 전의 것을 기준으로 삼아 현실과 동떨어진 면이 많다. 아빠들이 ‘아이 교육’과 관련해 현실을 아는 통로는 대부분 신문이나 뉴스다. 여기에는 엄청난 역경을 딛고 훌륭해진 사람이라든지, 지나친 사교육으로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이 주로 보도된다. 아빠들은 그런 극단적인 정보를 기본으로 받아들이고, 98%의 보통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아이의 교육에 대한 엄마와 아빠의 기준은 모두 현실에 맞춰야 한다. 과잉 반응도 안 되고, 지나친 낙관도 나쁘다. 초등학교 성적이 반 평균보다 못한 것은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지만, 관심을 갖고 주시해야 하는 것은 맞다. 아이가 틀린 문제의 개념을 알고 있다면 괜찮다. 하지만 모른다면 기초 학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평균보다 떨어지면 부모가 좀 도와주어야 한다. 기본적인 학습은 아이의 인지능력 발달에 있어서 중요한 과정이다. 인지능력이 균형 있게 발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부모의 의무이다.

은정 아빠는 은정 엄마를 ‘오버’라고 비난하기에 앞서, 틀린 문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같이 풀어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이 교육이나 육아에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이 받아들여지려면 그만큼 노동과 시간, 애정을 투자해야 한다. 배우자의 걱정과 불안도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은정 엄마는 혹시나 아이 성적에 민감한 것이, 나의 자존심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 공부는 부모의 자존심이나 체면이 아니다. 아이 자신의 성장 발달을 위한 아이의 과제다. 부모의 자존심을 위해 아이의 성적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간혹 아빠들은 공부하라고 달달 볶는 엄마보다 공부 안 해도 된다고 말하는 자신을 아이가 더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아이도 일부 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는 그것만으로 아빠를 더 좋아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엄마든, 아빠든 자신과 매일 치열하게 상호작용하는 사람과 깊은 정이 생긴다. 아이들이 항상 엄마 편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싸우기도 하고 혼나기도 하고 칭찬도 받으면서 하루 종일 엄마랑 상호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도 아이의 초등학교 성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등학교 성적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의 성적에 관심을 가져야 고등학교 가서 갑자기 아이를 잡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두고 내 아이를 제대로 파악하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엄마#아빠#공부#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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