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치명적 전염병이 휩쓴 도시… 생사의 교차로에 선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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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소나 돼지가 아닌 반려동물, 이를테면 개와 인간 사이에 구제역보다 더 치명적인 인수공통전염병(사람뿐만아니라 동물도 걸리는 감염병)이 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28(정유정·은행나무·2013년) 》
 

치료제가 없는 전염병이 도시를 휩쓴다면 어떻게 될까. 소설 ‘28’은 가상의 도시 ‘화양’을 배경으로 이 같은 상황에 놓인 도시를 보여준다. 사실 소설까지 갈 필요도 없다. 불과 1년 전 한국 사회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통해 그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한국 최고의 종합병원을 자처하던 곳에서 수십 명의 감염자가 발생하는가 하면, 정보를 알리기는커녕 숨기는 데 급급한 정부의 모습에서 많은 이들은 절망감을 느꼈다.

작가가 그려낸 세상은 더 참혹하다. 이른바 ‘빨간 눈’으로 불리는 인수공통전염병이 창궐하자 정부는 도시를 봉쇄한다. 치료제도 없고, 병에 걸리면 일주일 안으로 사망에 이르는 강력한 질병 앞에 속수무책인 까닭이다. 그 속에 남은 사람들과 동물들은 서로를 죽이며 파멸한다.

아비규환 속에서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갈망하기 마련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마찬가지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소설에서 5명의 사람과 1마리 개의 시점이 교차돼 있는 것도 각자의 삶에 대한 갈망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생존 앞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전해주고 싶은 듯하다.

다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전염병이 발생하자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인을 동원해 시민들의 휴대전화 사용, 인터넷 사용을 금지했다. 이 부분이 별다른 설명 없이 묘사되면서 다소 무리한 전개라는 느낌을 준다. 또 화양시 밖의 국민들이 화양의 전염병 사태에 지나치게 무관심한 것으로 묘사되는 부분도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이 소설에서 아쉬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극적인 전개를 위해 그런 부분을 눈감고 넘어간다면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정유정#은행나무#28#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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