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조희연, 블레어에게 좀 배우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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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얼마 전 여름휴가 때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회고록 ‘여정’을 읽었다. 영국 노동당을 현대화한 그가 교육에서도 노동당의 평준화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나타나 있다.

영국 런던 첼시에 ‘런던 오러토리 스쿨’이라는 학교가 있다. 요새 말로 런던에서 가장 핫한 학교 중 하나다. 사립학교(public school)도 아니고, 시험 쳐서 들어가는 그래머스쿨(grammer school)도 아니고, 평준화 학교인 종합학교(comprehensive school)인데도 그렇다. 특색이 있다면 가톨릭계 학교라는 점이다. 영세를 받은 학생에게 우선적으로 입학 자격이 주어진다.

가톨릭계 학교는 정부 예산만 아니라 지역 가톨릭 공동체로부터 기부를 받기 때문에 일반 종합학교보다 예산이 풍족하다. 일반 종합학교와는 달리 엄격한 교육 전통이 살아있어 학습 분위기도 좋다. 무엇보다 예술 체육 교육이 충실하다.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내려고 자녀가 유아일 때 영세를 줘놓고 대비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는 가디언지(紙)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블레어는 1994년 노동당 당수가 되던 해 첫째 아들을 이 학교에 보냈다. 당시 노동당원들은 자녀를 일반 종합학교에 보내는 것이 의무처럼 돼 있었다. 1960년대 학교 선택제를 폐지하고 종합학교를 도입한 것이 바로 노동당이었다. 블레어는 “가톨릭계 종합학교일 뿐”이라고 했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머스쿨은 보수당 교육구에만 남아있는데 오러토리는 노동당 교육구의 그래머스쿨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블레어는 위선적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나 블레어는 “나는 아이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고 결심했다.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음에도 교육수준이 낮거나 보통인 일반 종합학교에 보내는 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일”이라며 결국 오러토리에 보냈다.

블레어가 이 일로 난처했을 때 그의 섀도 내각에서 장관직을 맡은 해리엇 하먼은 한수 더 떠 둘째 아이를 그래머스쿨에 보냈다. 해리엇은 이미 첫째 아이를 오러토리에 보냈다. 블레어는 “그래머스쿨에 보내기로 한 것은 부모로서 그녀가 선택할 일”이라고 변호했다. 블레어는 후에 둘째와 셋째 아이도 오러토리에 보냈다.

영국은 독일 프랑스에 비해서도 교육 평준화를 강력히 추진한 나라다. 그런데도 노동당 지도부에서조차 이런 균열을 막지 못했다.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대학에 갈 능력이 있는 아이와 직업교육을 받아야 할 아이를 나누는 나라다. 사회민주당은 대학준비학교인 김나지움(Gymnasium)과 직업학교를 통합한 게잠트슐레(Gesamtschule)를 도입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프랑스는 공립학교 일색일 것 같지만 반(半)공립 반사립(priv´e sous contrat)학교가 의외로 많다. 좋은 반공립 반사립학교는 상당한 학비를 받는다. 교육열이 있는 학부모들은 자녀를 좋은 반공립 반사립학교에 보내려고 애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박정희 대통령에 비판적인 사람이다. 그런 그가 박정희의 평준화 정책만은 높이 사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정희를 칭찬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합리화하고 싶은 것이겠지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말이라도 박정희식 평준화 정책을 들먹이다니 정말 세상물정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 교육감은 자녀를 외국어고에 보냈다. 블레어나 조 교육감이나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냈다는 점에서는 같다. 다만 블레어는 자기가 보내고 나서 그 학교를 없애거나 하지 않았다. 조 교육감은 자사고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자사고는 외고가 아니다’라고 변명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교육관이 일관성 있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조희연#블레어#교육#박정희#평준화#외국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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