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박형준]증거 없으면 일본인 납북도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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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도쿄특파원
박형준 도쿄특파원
올해 4월 초였다. 친하게 지내던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가 “과거 위안부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제주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2007년 86세로 사망·일본군이 제주도에서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갔다고 밝힘)의 증언을 검증하겠다고 했다.

당시 기자는 제주도 출신 대학 친구, 위안부 관련 연구자, 제주도 학교 등에 일일이 연락해 수소문했으나 도저히 대상자를 찾질 못했다. “아무래도 현장에 가 몸으로 부딪쳐야 할 것 같다”고 아사히신문 기자에게 얘기해줬다.

그로부터 약 4개월이 지난 8월 5일, 아사히신문은 “제주도를 다시 취재했지만 요시다 씨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이야기를 얻을 수 없었다. 요시다 씨의 증언을 거짓이라고 판단하고 기사를 모두 취소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자유의 박탈과 존엄 유린 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자”고 제언했다.

용기 있는 보도였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자’는 제언 역시 적절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이다.

최근 기자가 일본 지인 6, 7명과 저녁을 겸한 술자리를 할 때였다. 한 일본인이 “강제동원 증거도 없는데 아사히가 오보를 했다”고 말했다. 전쟁 때 다들 위안소를 운영하는데 왜 일본만 문제 삼느냐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동조했다. 특파원 생활 2년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낯선 풍경이었다.

요즘 페이스북 등에는 아사히신문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아사히신문 정문 앞에는 거의 매일 극우세력이 몰려와 데모를 벌인다.

정치인들은 한 술 더 뜬다.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 담화를 대신하는 새 관방장관 담화를 발표해야 한다는 것을 당론으로 정했다. 제1야당이자 리버럴한 성향의 민주당조차 지난달 29일 회의에서 “아사히신문의 책임을 국회에서 물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들의 핵심 주장은 “일본 정부나 군이 위안부를 강제로 연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大阪) 시장은 위안부들이 받았을 고통에 위로의 뜻을 전하면서도 마지막 발언은 항상 “정부나 군이 강제 연행한 증거는 없다”로 끝난다. 다음 발언을 추정하자면 “민간 업자들이 위안부를 모집했고, 위안부들은 스스로 선택에 따라 몸을 팔았다”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위안소의 설치 및 관리,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증거에는 입을 닫는다. 위안부들이 감언이나 강압 등에 의해 본인 의사에 반하여 모집됐다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는다. 오직 ‘강제 동원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문서)가 없다’는 사실 하나에만 집착할 뿐이다. 이를 두고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주오(中央)대 교수는 2012년 8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정부 문서에 ‘일본인을 납치하라’고 돼 있는 게 없다고 북한의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도 되나”라며 비꼬았다.

최근 오사카에 사는 일본인 독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한국 정부가 참고할 대목이 있어 소개한다.

“한국 정부가 내년에 위안부 백서를 만들어 발표하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일입니다. 일본 자료는 너무나 많은데 한국 측 자료가 너무 없습니다. 일본이 과거를 직시할 수 있도록 한국도 많은 자료를 발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형준 도쿄특파원 lovesong@donga.com
#위안부#아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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