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광란의 소년… 악행 원인 추적해보니 ‘가정 폭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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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前 버스탈취 사건 다룬, 日 ‘어느 날, 내 아이가 괴물로 변해 있었다’

2000년 5월 3일 낮 12시 56분 일본 니시테쓰(西鐵) 버스는 사가(佐賀) 현 사가 시에 있는 제2합동청사를 정시에 출발했다. 목적지는 후쿠오카(福岡) 시 덴진(天神) 버스터미널.

약 30분이 지났을 때였다. 당시 17세였던 한 소년이 운전사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길이 40cm의 칼을 꺼내더니 운전사 목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승객에게 외쳤다. “너희들의 행선지는 덴진이 아니라 지옥이다!”

버스를 탈취한 청년은 운전사에게 덴진과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게 했다. 승객들에게는 커튼을 치도록 명령했다. 그 후 버스가 야마구치(山口) 현에 도착하기까지 소년은 3명의 승객에게 칼을 휘둘렀다. 그때 68세의 여성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 내 버스 탈취 사건 중 사람이 죽은 첫 사례였다.

원래 버스는 오후 2시 6분 덴진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야 했다. 오후 3시가 되어도 터미널에 도착하지 않자 니시테쓰 영업소는 사라진 버스를 수소문했다. 무선으로 연락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니시테쓰 측은 경찰에 신고했다.

버스가 주고쿠(中國) 자동차도로에 들어섰을 때 교통경찰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칼을 든 소년이 당황했다. 그때 한 남성이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렸다. 얼마 후 또 한 명의 남성이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소년은 탈출에 대한 보복을 하겠다며 승객들에게 또 칼을 휘둘렀다.

버스는 히가시히로시마(東廣島) 시의 건물 옥상 주차장에 정차했다. 그때부터 경찰과 대치가 이어졌다. 소년은 음식을 요구하며 부상당한 인질 3명을 풀어줬다. 소년의 가족이 와서 “칼을 버리라”고 설득했지만 소년은 말을 듣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지 15시간 반 후인 4일 오전 5시경 특수부대원 15명이 급습해 소년을 체포했다. 광란의 버스 탈취 사건도 끝났다.

‘니시테쓰 버스 탈취 사건’이 14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사건을 다룬 ‘어느 날, 내 아이가 괴물로 변해 있었다’라는 책이 최근 출간됐기 때문이다. 프리랜서 작가인 저자 이리에 요시마사(入江吉正·62) 씨는 서문에서 “소년은 왜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였을까. 어떤 마음의 변화를 통해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고 믿게 됐을까. 그 같은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책은 소년의 가족 이야기로부터 시작했다. 이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소년의 행적을 다뤘다. 소년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았고 집 안에 틀어박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로 살았다. 가출도 했다. 고교를 중퇴하면서부터 세상의 모든 것들이 불만이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느꼈고 그때 그는 버스 탈취를 감행했다.

이리에 씨가 소년의 행적을 되돌아보며 내린 결론이 있다. 소년이 괴물로 변해버린 이유는 ‘가정 내 폭력’ 때문이란 것이다. 원인을 알면 대책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이리에 씨는 사회에 반항하는 괴물을 바로잡아 줄 이는 가족이라고 암시했다. 소년원에 수감된 청소년에게 ‘악행을 멈추게 할 브레이크가 무엇인가’를 묻자 약 70%가 “가족”이라고 답했다는 2011년판 일본 범죄백서를 인용하면서.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어느 날#내 아이가 괴물로 변해 있었다#버스탈취 사건#가정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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