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동학]<15·끝>자크 라캉 연구하는 ‘라캉 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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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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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김종주 신경정신과의원 세미나실에 모인 라캉 독회 회원들. 뒷줄 왼쪽부터 이병혁 서울시립대 교수,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이만우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과장, 김아영 용인정신병원 전공의,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임말희 눈출판사 사장, 박시성 고신대 의대 교수, 앞줄 왼쪽부터 이남보 이남보이비인후과 의원장, 김종주 원장, 한형구 서울시립대 교수. 이새샘 기자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김종주 신경정신과의원 세미나실에 모인 라캉 독회 회원들. 뒷줄 왼쪽부터 이병혁 서울시립대 교수,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이만우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과장, 김아영 용인정신병원 전공의,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임말희 눈출판사 사장, 박시성 고신대 의대 교수, 앞줄 왼쪽부터 이남보 이남보이비인후과 의원장, 김종주 원장, 한형구 서울시립대 교수. 이새샘 기자

“읽을수록 어려운 글에 18년째 중독”

정신과 의사-영화-사학자 등 저작물 읽고 번역서 내기도

“정신분석학 핵심 파악하니 각자 전공분야 이해에 도움”

“그런데 이 부분에서 ‘전이’라는 말과 ‘false being’, 그러니까 ‘거짓된 나’라는 말이랑 연결이 되시나요? 번역을 상당히 매끄럽게 하셨는데….”

“처음 읽어봐서 그런지 좀 어렵네요. 서너 번 읽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문제점을 다시 한 번 지적해 주세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의 저작을 읽는 ‘라캉 독회’ 모임이 26일 오후 7시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김종주 신경정신과의원에서 있었다. 진료실 뒤쪽에 마련된 세미나실 책상에는 그동안 회원들이 읽었거나 번역한 책, 혹은 정신분석학에 관해 회원들이 쓴 책 30여 권이 쌓여 있었다.

1992년부터 시작한 독회는 매달 둘째 주와 넷째 주 토요일에 열린다. 회원 수는 10∼15명. 둘째 주에는 라캉의 세미나(Ecrits)를 읽고 넷째 주에는 다른 학자들이 쓴 라캉 관련 저작을 읽는다. 지금까지 라캉의 세미나 중 1, 2, 3, 7, 11, 17, 20권을 읽었고 2006년 영어 완역본이 나와 이 완역본으로 다시 한 번 읽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라캉 정신분석 사전’ ‘시선과 목소리’, 공동저작으로는 ‘코리안 이마고 1, 2’ 등이 있다.

이날 모임에서 읽은 책은 미국 듀크대에서 출판한 ‘Cogito and the Unconscious’ 2권. 슬라보예 지제크를 비롯한 학자들이 라캉의 사상을 해설한 책이다. 이날 발표를 맡은 이병혁 서울시립대 교수(도시사회학)가 자신이 번역해 온 부분을 읽은 뒤 의문이 가는 부분에 대한 회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결국 여기선 ‘alienation’하고 ‘separation’이 어떻게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나요?”

“둘 다 비슷하다고 보는 거죠. 라캉 자신은 세미나 11에서 아주 다른 것처럼 설명했는데 이 책에서는 결국 같다고 설명하고 있거든요.”

독회에는 정신과 의사, 언어사회학자, 매스컴과 영화학 전공자, 국사학자, 문학비평가 등 여러 분야의 학자가 참여한다. 라캉 본인이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 정신분석학자이면서 그의 이론이 영화, 문학, 언어학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며 전개되기 때문이다.

“라캉을 맛으로 표현한다면, ‘뭔 맛?’ 정도가 되겠네요. 아무리 읽어도 점점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에요. 한발 한발 늪에 빠져드는 것처럼 푹 빠져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죠.”

이 교수는 라캉이 어떤 이론가인지를 묻는 말에 농담처럼 말을 건넸다. 이렇게 ‘읽을수록 난해한’ 학자에게 10년이 넘도록 매달리는 이유를 물었다.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매스커뮤니케이션)은 “라캉은 인간의 심리 형성 자체를 타인 의존적이라고 보는 등 과격한 인간관을 보이지만 오히려 그 점이 타인과 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독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종주 신경정신과의원의 김종주 원장은 “실제 환자를 치료하면서 기존 치료법의 한계를 많이 느꼈는데 라캉을 공부하며 그 돌파구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라캉의 이론이 문학비평에서 많이 사용됐지만 제대로 알고 사용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한형구 서울시립대 교수·국문학), “정신분석학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문제가 성적, 감각적인 문제인데 그런 힘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람 사는 문제를 다루는 역사 역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한국사)는 답도 돌아왔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느꼈던 한계를 라캉을 통해 돌파하려 한다는 답이 많았다.

이들은 지금 2권을 읽고 있는 ‘Cogito and the Unconscious’의 1권 번역을 끝낸 상태다. 김 원장은 “책을 낸 뒤 인세를 받으면 ‘정신분석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고 말했다. 벌써 어디로 갈지 계획도 세웠다. “프로이트가 태어난 헝가리도 가야 하고 라캉의 도시인 파리도 가야 한다”고 말하던 김 원장은 “이런 책이 잘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며 웃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자크 라캉(1901∼1981)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철학자로 “무의식이 마음속에 있는 본능의 저장소가 아니라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1932년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지도를 받았으며 논문 ‘개성에 비추어본 망상증’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언어학과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재해석했다. 1953년 프랑스정신분석학회를 창설하고 1966년 자신의 세미나를 정리한 ‘에크리(Ecrits)’를 출판해 명성을 얻었다.
▼라캉 독회 회원들이 꼽은 대표적 명제▼

-향락하라.(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사랑이 없으면 존재의 의미도 없다.(한형구 서울시립대 교수)

-나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하나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김종주 김종주신경정신과의원장)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이병혁 서울시립대 교수)

-당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이만우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과장)

-주체는 자기가 무엇을 말하는지, 심지어 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박시성 고신대 의대 교수)

-진실은 허구로 구성되어 있다.(임말희 눈출판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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