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이야기]이용희의원, DJ와의 약속때문에 골프 안친다

입력 2005-01-16 18:09수정 2009-10-09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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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이용희(李龍熙) 국회행정자치위원장은 골프를 못 친다. 아니 ‘안 쳤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33년 전 무심코 했던 한 약속 때문이었다.

1971년 당시 신민당 김대중(金大中·DJ) 의원은 7대 대통령선거 후보선출 전당대회를 준비하던 중 자신의 승용차에 동승한 이 위원장에게 불쑥 “이 사람아, 우리는 골프치지 마세. 시간낭비에 너무 사치스러운 운동 아닌가. 국민정서에도 안 맞고…”라고 제안했다. 당시 DJ 계보의 2인자였던 그는 “형님, 알겠습니다”라고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고지식하게 이 약속을 지켰다. 고인이 된 김재광(金在光) 의원이 골프채를 안겨주며 연습장까지 끌고 갔지만 그를 필드로 끌어내지 못했다. 그는 ‘의리’를 중시한다. 이 위원장실의 김택현 보좌관은 40년, 노덕산 보좌관은 32년간 그를 모셨다.

그는 12대 국회 이후 4번의 총선과 한 번의 도지사 선거에서 잇따라 낙선했다가 17대 선거에서 기사회생했다. 16년의 정치공백 때문에 자연스럽게 DJ와도 멀어졌다. 계보의 2인자 자리는 권노갑(權魯甲) 전 의원이 이어받았다.

그러던 이 위원장이 최근 골프채를 쥐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봄이 오면 세 아들과 라운딩을 하기로 했다. 권 전 의원과 동갑(74세)인 그의 해석은 “DJ가 대통령 되면서 이제 약속 시효가 끝났다”는 것. 실제 DJ는 1997년 대선 때 한 골프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보수층을 겨냥해 골프 예찬론을 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퍼블릭골프장이 들어선 것도 DJ의 공약에서 시작됐다.

반면 1995년 골프 때문에 DJ로부터 야단을 맞고도 계속할 만큼 골프를 좋아했던 권 전 의원은 지금은 골프를 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2002년 현대비자금 사건으로 세 번째 영어(囹圄)의 몸이 된 그는 지금 발끝이 썩는 당뇨후유증으로 병원에서 치료 중이기 때문. 최근 기자가 그의 병실을 찾았을 때 그는 발톱 10개가 모두 뽑힌 발가락을 만지며 “어서 발톱이 나와야 골프를 칠 수 있을 텐데…”라고 웃었다. 정치무상의 한 단면이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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