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뿌리읽기]<74>피서(避暑)

  • 입력 2004년 7월 6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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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河北)성 承德(승덕)에 가면 중국 최고의 피서지로 알려진 避暑山莊(피서산장)이 있다. 청나라 때 만들어진 行宮(행궁·임금이 거동 때 묶던 별궁)으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아름다운 곳이고, 매년 한여름이면 중국 공산당의 주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 우리에게는 ‘熱河日記(열하일기)’의 주된 배경이 되는 熱河로 알려져 더욱 친숙하고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기도 하다.

避暑는 더위(暑)를 피한다(避)는 뜻이다. 暑는 日(날 일)과 者로 이루어졌는데 者는 소리부도 겸한다. 者는 갑골문에서 솥에다 콩(叔·숙)을 삶고 있는 모습을 그렸는데, 소전체에 들면서 지금의 형체로 고정됐다. 그래서 者는 ‘삶다’가 원래 뜻이다. 하지만 그 뒤 ‘∼ 하는 사람’의 의미로 가차되어 쓰이자, 원래 뜻을 표현하기 위해 火(불 화)를 더한 煮가 만들어졌는데, 의미가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됐다. 그래서 暑는 솥에 콩을 삶듯(者)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日)을 말한다.

避는 의미부인 착(쉬엄쉬엄 갈 착)과 소리부인 (벽,피)이 결합해 만들어진 글자다. (벽,피)은 갑골문에서 형벌 칼(辛·신)로 신체의 살점을 도려낸 모습을 그려, 大(벽,피)(대벽·사형)에서와 같이 사형을 뜻했다. 고대 중국에서 大(벽,피)과 같은 최고의 형벌은 임금만이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었던지 이에 ‘임금’이라는 뜻도 생겼다.

그래서 (벽,피)에는 칼로 살점을 잘라내듯 ‘가르다’는 뜻이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예컨대 劈(쪼갤 벽)은 칼(刀·도)로 가르는(벽,피) 행위를 뜻하고, 壁(벽 벽)은 어떤 영역을 서로 갈라놓은 흙담(土·토)을 말한다. 또 霹(벼락 벽)은 비(雨·우)가 올 때 구름과 구름이 서로 만나 하늘을 가르며 내뿜는 엄청난 양의 전기를 뜻하고, 闢(열 벽)은 天地開闢(천지개벽·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열림)에서처럼 門(문)이 갈라져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을 말한다. 또 璧은 중간을 둥글게 잘라낸 아름다운 玉(옥)을 말하는데, 이는 옛날 임금(벽,피)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쓰이기도 했다.

그래서 避는 ‘갈라놓은(벽,피) 다른 영역으로의 이동(착)’을 뜻하며, 避暑는 더운 곳에서 덥지 않은 곳으로 옮겨감을 뜻한다. 그렇다면 避에서의 (벽,피)에도 ‘가르다’는 뜻이 깊숙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벽,피)은 의미부의 기능도 함께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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