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55…1929년 11월 24일 (6)

  • 입력 2002년 10월 23일 17시 56분


여자는 다시 한 번 암탉을 뜨거운 물에 담갔다. 담그면 담글수록 털은 뽑기 쉽지만 껍질과 살이 맛없어지니까 적당히 해야 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물에서 꺼내 넓적한 돌 위에 놓는다. 암탉에서 피어오르는 김 때문에 손이 잘 보이지 않는다. 휭-휭-, 바람이 김을 몰아낸다. 볏도 머리도 다리도 항문에서 튀어나온 내장도 새하얗다. 둥둥둥 둥둥둥, 여자는 가끔씩 찬물에 손을 담그고서 털을 뽑는다. 털이라고 해 봐야, 이미 선인장 가시 같은 뿌리밖에 남아 있지 않다. 잡아 뽑고, 잡아 뽑고, 꽤 힘이 필요하다, 손가락을 물에 담그고, 뽑고 뽑고 뽑고, 둥둥둥 둥둥둥, 물에 담그고, 뽑고 뽑고 뽑고, 둥둥둥 둥둥둥, 한 손으로 다리를 잡고 항문을 눈높이에 맞춘다. 항문 주위에 털이 남아 있다. 손가락에 힘을 줄 때마다 앞으로 축 늘어져 있는 머리가 덜렁 덜렁 흔들린다. 뽑고 뽑고 덜렁덜렁. 우물물을 좍 끼얹고서 대얏물에 담가 무에 묻은 흙을 떨어내듯 싹싹싹. 뼈와 살만 남은 날개를 뒤집자 뒤쪽에 아직 털이 남아 있었다. 잡아 뽑고 잡아 뽑고, 한 오라기도 놓치지 않는다, 벌거숭이로 만들어주리라. 짧고 단단한 머리털을 손가락 끝으로 잡아 뽑고 뽑고. 대얏물을 버리고 다시 담아 씻는다. 아기 기저귀를 빨 때처럼 싹싹싹 싹싹싹. 머리를 잡아당기고 목을 비비자 피부가 당겨져 눈이 반쯤 떠졌다. 허연 막이 껴 있는데, 눈꼬리 쪽에 검은자위가 슬쩍 보인다. 싹싹싹 싹싹싹, 손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맥박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느리다, 겨울잠을 자는 뱀처럼, 두근……두근……두근…….

이제 깨끗해졌지. 여자는 놋대야 속에 암탉을 집어넣고, 우물물을 퍼서 돌 위에 널려 있는 털을 씻어내더니 암탉을 꺼내 그 위에 올려놓았다. 둥둥둥 둥둥둥 휭-휭-, 부엌칼을 쥔다, 허리를 구부린다, 관절 주위에 칼집을 넣는다, 뚝 하고 부러뜨리고 칼로 쳐서 자른다, 오른 다리! 칼집을 넣고, 뚝 부러뜨리고, 쳐서 자르고, 왼다리! 놋대야 속에 좌우 다리를 던져 넣는다. 둥둥둥 둥둥둥, 가슴에서 배로 길게 칼날을 댄다. 날 끝을 살에 묻는다. 검붉은 피가 솟구치면서 암닭의 허연 피부를 붉게 물들인다. 피는 손톱 속으로 튼 살 속으로 파고들고, 우득 우드득, 여자는 열리지 않는 큰대문을 억지로 비틀어 열 듯 온 힘을 다해 늑골을 갈랐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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