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커넥션<하>]건설사-조폭 ‘검은공생’ 해부

  • 입력 2002년 8월 15일 18시 43분


3월 대전 중구 용두동 철거현장에 동원된 철거용역업체 직원 200여명이 반발하는 주민들을 강제로 끌어내고 있다. - 동아일보 자료사진
3월 대전 중구 용두동 철거현장에 동원된 철거용역업체 직원 200여명이 반발하는 주민들을 강제로 끌어내고 있다. - 동아일보 자료사진
“인간의 탈을 쓰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니까요.”

10여년 동안 철거용역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A씨는 자신이 경험한 재개발 및 재건축 현장에서의 인력동원과 방화, 테러 등 온갖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소상히 털어놨다.

한 철거업체를 위해 ‘행동대장’ 역할을 해온 A씨. 지난 10여년간의 험난했던 세월을 말해주듯 그의 몸은 곳곳이 상처투성이였고 폭행관련 전과도 10여개나 됐다.

“재개발지역 철거 때 쇠파이프 하나만 들고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지요. 함께 간 동료는 여자가 필사적으로 저항하자 때려눕힌 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옷을 벗기고 밟아버리기도 했어요.”

▼글 싣는 순서▼

- <상>철거용역 폭력 얼룩
- <중>'주먹관리' 보스에 月5000여만원 지급

그러나 이런 건 별게 아니라는 듯 A씨는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섬뜩한 자신의 ‘무용담’을 이어갔다.

연계를 맺은 건설사의 재건축 수주를 성사시켜 줄 경우 수십억∼수백억원에 달하는 철거계약을 따낼 수 있기 때문에 철거업체는 뇌물제공, 반대세력 감금, 협박 및 폭행 등 뭐든지 닥치는 대로 하지만 결코 처음부터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고 A씨는 말했다.

“소위 이 바닥의 ‘기술자’들은 폭력 등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쉽사리 하지 않아요. 돈이면 다 되는데 굳이 왜 ‘주먹’을 씁니까. 상대가 생기면 찾아가 조용히 ‘몸 상할 것 없이 이것(돈) 먹고 떨어져라’고 하면 어지간한 건 해결됩니다.”

A씨에 따르면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 반대파 주민일 경우 2000만∼3000만원을 선수금 명목으로 주고 공사가 모두 끝나면 1억∼2억원을 더 준다는 것. 또 조합장에게는 3억∼10억원 정도의 돈을 주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돈이 통하지 않으면 그 다음 순서는 ‘협박’.

“상대와 조용히 마주 앉아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해요. 절대 흥분하지도 큰 소리도 내지 않고 상대방을 위협하지요.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납치해 죽여버리겠다’, ‘밤길에 뒤통수를 조심해라’, ‘마누라를 가만 두지 않겠다’는 식으로 협박해요. 반대파가 주최하는 창립총회에 가서는 상대방에게 조용히 다가가 귓속말로 이런 말을 하지요. 아마 섬뜩할걸요.”

A씨는 주민 등을 상대로 테러를 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고 반대파 폭력배들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파 조합장 1명을 테러하는 데는 보통 2명 정도가 동원되는데 교도소까지 갈 정도로 심하게 할 경우엔 변호사비를 제외하고 1인당 5000만∼1억원 정도가 들어요. 설사 교도소에 들어가더라도 좋은 변호사를 붙여주면 1심에서 나오는 게 일반적이고요.”

한 재건축창립총회 때 가짜 주민 500명을 동원해 봤다는 A씨는 1인당 10만원씩 5000만원을 지불했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외곽에 배치한 동원인력들에게는 1인당 20만원씩을 지불했다는 것.

“이 돈이 어디서 나겠어요. 시공사들이 주지 않으면…. 하지만 아무도 시공사들이 돈을 줬다거나 폭력을 사주했다고 말하지 않아요. 혼자 덮어쓰고 말지요. 한번 불면 이 바닥을 떠나야 하는데 일을 계속하기 위해선 입을 다무는 게 이 바닥의 불문율이지요.”

시공사들의 막대한 자금에 철거업체들은 알아서 길 수밖에 없다며 A씨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사업계획 완료후 시공사 선정해야▼

◆‘결탁비리’ 없애려면=각종 문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어 도대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 재건축 시장. 전문가들은 연간 80조원에 달하는 재건축 시장을 둘러싼 각종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선 현행 재건축 제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고 비리 적발과 분쟁을 조정할 전담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건설사가 수주에 들인 돈을 회수 못하게 해야〓시공 건설사와 철거용역업체들간의 ‘검은 결탁’을 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공사측이 공사를 따내기 위해 투입한 수백억원의 돈을 회수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현행 재건축 절차에 따르면 조합은 시공사를 선정한 이후 시공사와 공동으로 건설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공사는 시공사로 선정되기까지 들어간 각종 비용을 뽑으려고 전문성이 부족한 조합을 속여가며 건설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건설계획이 마련된 이후 시공사를 선정하면 시공사는 정해진 계획에 따라 공사를 해야한다. 따라서 정부는 시공사가 투입한 비용을 편법으로 회수하는 것을 막기 위해 9월 정기국회에 상정할 ‘도시 및 주거 환경 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에서 조합이 재건축 사업 계획을 승인 받은 이후에 시공사를 선정하도록 했다.

대한주택공사 재건축 컨설팅부 민진규(閔鎭圭) 팀장은 “지금처럼 시공사가 재건축 추진 초기부터 비용을 대는 구조에서는 조합이 시공사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며 “조합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자금으로 주민 동의 하에 사업계획서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건축추진위와 컨설팅사의 자격 요건을 강화해야〓재건축추진위원회와 컨설팅사는 재건축의 중요한 주체들. 추진위는 주민으로부터 재건축 동의를 받아 조합이 만들어지기 이전까지 재건축 준비를 하고, 컨설팅사는 복잡한 행정절차를 대행하면서 시공사 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현행 법규는 추진위와 컨설팅사에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서 추진위가 난립하고 건설사가 직접 컨설팅사를 차려 수주전에 뛰어 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입법예고된 도시정비법안은 주민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추진위원장이 될 수 있고, 추진위원장은 구청 등 재건축 승인기관으로부터 신원조회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자격증과 일정 규모의 자본금을 확보해야 컨설팅사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분쟁조정 및 조사권 강화〓새로운 제도를 제대로 집행하기 위해선 당국의 철저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 하지만 재건축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나 각 지방자치단체는 인원 부족으로 관리 감독은커녕 민원 처리에도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건설교통부 주거환경정비팀 오주용(吳株鎔)씨는 “정부는 재건축과 관련한 각종 문제를 전담하는 기구를 설치해 폭행이나 비리 등의 문제가 생길 경우 철저히 진상조사를 하고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조합장이나 추진위원장, 컨설팅사 대표 등 재건축 주체들이 시공사와 유착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공무원에 준하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처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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