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은의 이야기가 있는 요리]한국-이탈리아는 '음식사촌'

  • 입력 2002년 1월 24일 15시 53분


아침에 눈 뜨면 배 고프고 세끼밥 챙겨 먹다보면 어느새 또 밤이 온다. 과일 나는 계절엔 과일을 먹고 적적한 저녁엔 한잔 술 생각이 나며 경치 좋은 물가에는 사랑하는 남녀가 있다. 사람 사는 곳은 먹거리도 똑같다. 지리적, 자연적 조건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생존적 이유에서 출발하는 식문화는 특히나 지형적 조건이 비슷할수록 유사성을 띄기 마련이다.

이탈리아를 보자. 반도에 사는 이탈리아인들은 바다와 땅을 고루 접하는지라 자신감과 패기가 있으며 개방적이고 정열이 있다. 마늘을 음식의 밑간으로 사용하는 이탈리아의 음식은 우리 한국인이 접하기에 가장 무난한 서양메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미 우리나라 구석구석에서 성업중인 피자집 파스타집의 인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탈리아 음식과 한식은 비슷비슷한 요소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가 즐겨먹는 참기름 대신 올리브유로 맛을 돋운 스프가 존재하며 갖은 속과 호돌호돌한 반죽이 입에 붙는 만두가 ‘라비올리’란 이름으로 불린다. 라비올리. 사전에서 찾아보면 고기나 야채류로 속을 채운 반죽의 일종이라 하니 말그대로 우리가 익숙한 만두라 해도 별 무리가 없다.

봄이 올 듯 햇살이 간질거리다가도 막바로 쌀쌀한 밤이 이어지는 2월이다. 온식구 둘러앉아 라비올리를 빚어봄이 어떨지…. 시큼하게 퍼지는 올리브 기름냄새와 밀가루 향이 이국적이다.

소금 간만 약간 들어가는 만두 반죽에 비해 라비올리 반죽에는 넉넉한 양의 달걀과 올리브 오일이 섞여든다. 만두 반죽시 녹말가루나 찹쌀가루를 조금씩 묻혀가며 주무르면 완성된 만두피에 윤기가 도는데 라비올리의 경우 올리브유가 들어가서 반들한 윤이 나는가 싶다. 만두처럼 라비올리에도 색을 입힐 수 있는데 반죽할 때 시금치물이나 당근물 또는 오징어먹물을 섞으면 녹색, 주황색, 검정색 등의 반죽이 탄생한다.

만두 속을 보자. 어머니들의 ‘전통조리법’에 따르면 만두 속을 어찌 만드느냐에 따라 고향을 알 수 있다 하는데 얇은 호박이 주가 되는 개성의 호박편수나, 김치와 두부가 주재료인 평안만두에서 고기맛은 없다. 이에 비해 이남으로 내려오면 속을 채우는 다진 고기의 비율이 점점 커지며, 부추나 호박 등 그 지방의 흔한 부재료들이 핵심이 되는 경우도 많다.

라비올리 역시 속을 채우는 방법은 각양각색. 이탈리아 해안지방에서는 봉골레(모시조개)파스타를, 내륙도시 밀라노에서는 미트소스 파스타를 먹듯, 지중해와 닿은 지역의 속재료로는 갖은 해산물, 예컨대 오징어나 ‘엔초비(정어리절임)’를 맛볼 수 있고, 북부와 내륙쪽으로 갈수록 고기 함량이 많아진다.

엔초비나 올리브의 향은 매력은 있으되 강한지라, 우리 만두속의 두부를 이용해 보면 좋다. 짭짤한 엔초비와 두부를 한데 으깨고 검정 올리브를 다져 섞으니 간도 적당하여 거부감이 없다. 시금치를 살짝 볶아서 다져 넣어도 좋다.

젖은 면보에 싸서 휴식시킨 반죽을 떼어 밀고 준비된 속을 채워 원하는 모양으로 빚으면 된다. 일반적으로 한장의 반죽을 반으로 접는 반달모양보다는 동일한 모양의 반죽 2장을 포개어 만든 온전한 원형이나 사각형이 정통이다.

자∼. 완성된 라비올리를 익히는 일만 남았다. 라비올리의 장점은 실용성인데 내용물이나 곁들이는 소스에 따라 전채로부터 메인요리까지 가공이 자유롭다. 반죽할 때 소금의 양을 줄이고 설탕을 섞어 과일로 속을 채우면 디저트가 된다.

오늘은 라비올리를 간단한 스프국물에 띄워보자. 물에 불려 부들부들해진 흰콩을 연한 닭육수와 함께 끓여서 마늘과 파슬리를 얹으면 이탈리아풍의 흰콩스프인데, 여기에 살짝 데친 ‘엔초비 두부 라비올리’를 몇 알 띄우면 설렁탕 뚝배기 마냥 푸짐하다.

함께 곁들일 오늘의 와인은 ‘Dolcetto d’Alba(돌체또 달바)’. 장화 모양의 리베리아 반도 북서쪽에 위치한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 산지 피에몽(Piedmont)지방에서 나는 와인이다. 떫고 탁한 맛 없이 새콤하고 향긋한 과일 맛이 강하여 프랑스 와인 중 가장 엷은 맛의 보졸레(Beaujolais)와 곧잘 비교되는 레드와인이다.

흰콩 맛이 고소한 국물과 라비올리 한 덩이를 큰 스푼에 얹어 한입에 베어물자. 올리브나무 그늘의 이국적인 바다향이 입안에 가득하고 낯익은 두부의 으깨진 감촉이 혀에 닿아 부드럽다. 여기에 더해지는 포도주의 발그레한 단향에 인생이 조금은 달콤해 진다.

La dolce vita(라 돌체 비타·이탈리아 말로 ‘감미로운 인생’.)!

◆ 반죽

▽재료〓밀가루 300g, 달걀 2개, 올리브유 3∼5큰술, 소금 약간

▽만드는 법

①밀가루는 체로 치고 소금과 섞는다.

②체 친 밀가루의 중앙부를 옴폭 파서 달걀을 풀고 올리브유와 섞는다.

③손에 붙지 않을 정도로 끈기가 생기게 반죽한 뒤 젖은 면보로 덮어둔다.

◆ 라비리올리 속

▽재료〓두부 1모, 엔초비 20g, 검정올리브 15g, 시금치 60g, 후추 약간

▽만드는 법

①으깬 두부와 으깬 엔초비를 섞는다.

②검정올리브를 ①에 다져 넣고 후추로 간을 맞춘다.

③기호에 따라 시금치를 살짝 볶아서 소금과 후추간을 한 뒤 다져 넣는다.

◆ 스프

▽재료〓흰콩 100g, 물 0.6ℓ, 닭육수 0.4ℓ, 올리브유 1큰술, 마늘 1톨, 다진 파슬리1큰술, 소금, 후추

▽만드는 법

①흰콩은 물에 담궈서 하룻밤 불린다.

②①을 물과 육수에 넣고 푹 삶는다.

③②의 반만 갈아놓은 뒤 다시 나머지 반과 합친다.

④썬 마늘과 다진 파슬리를 올리브유에 볶아서 ③에 섞고 소금, 후추로 간을 맞춘다.

*재료비〓일상재료(밀가루, 달걀, 마늘 등) 1500원, 파슬리 600원, 흰콩 1000원, 두부1000원, 엔초비 2000원, 시금치 700원, 올리브 1500원, 와인 약 2만∼2만3천원

파티플래너·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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