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청천]『홍난파는 민족음악가였나』

  • 입력 1997년 5월 26일 08시 07분


지난 24일 오후 경기 수원시 수원매산시장 앞 경기서적 4층. 「수원시민과 함께 하는 이야기 한마당」이 벌어졌다. 수원시민광장이 주최한 이 모임에서 金奉雨(김봉우)민족문제연구소장이 「작곡가 洪蘭坡(홍난파)의 친일문제」에 관해 강연했고 토론이 이어졌다. 김소장은 이날 『홍난파를 민족음악가로 추앙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그가 작곡한 「봉선화」는 일제가 민족의식의 허무성을 고취하기 위해 왜정 말기까지 추천 장려했던 노래』라고 주장했다. 이날 모임은 경기도립극단이 지난 14, 15일 홍난파를 기리는 뮤지컬 「고향의 봄」을 성황리에 공연한 뒤 일각에서 『난파가 과연 애국적 민족음악가였느냐』는 논란이 일면서 마련됐다. 경기도립극단은 이번 공연에서 난파의 민족애를 부각시키려고 애썼다. 뮤지컬을 연출한 李在寅(이재인·경기도립극단 상임연출)씨는 『드라마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 친일행위의 동기를 「봉선화」 작곡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이 작품에서 난파가 일경에 체포돼 고문당한 것으로 묘사한 이씨는 『폭력이나 고문이 없었더라도 왜경의 연행이나 신문을 「체포」와 「고문」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흥사단 경기지부 등 많은 관계자와 단체들은 여러 증거를 제시하며 『난파가 흥사단 사건에 연루돼 「3개월 옥고」를 치렀다는 사실도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간명한 진리를 생각케 하는 자리였다. 〈수원〓임구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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