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환경난민을 취재하러 방문한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의 첫인상은 끔찍했다. 공항에서 차를 타고 나가다 들른 주유소에선 차가 몇 대 없는데도 30분이나 줄을 서야 했다. 그 사이 모기떼가 사정없이 온몸을 뜯어댔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아무데나 허공에 대고 손뼉을 치면 모기 한두 마리씩은 잡혀 나왔다. 공항 카페에서 오렌지 주스 한 잔 시켜 놓고 앉아 있을 때도 잠깐 사이에 모기 네 마리가 잔 속에 빠져 익사했다. 모기가 이렇게까지 많아진 건 공항 주변에 생긴 난민촌 때문이라고 했다. 생활 폐수로 곳곳에 웅덩이가 만들어지면서 최악의 환경이 된 거다.
방글라데시 전역에 살던 사람들이 꾸역꾸역 다카로 몰려들어 난민 생활을 하게 된 것은 기후 변화 탓이었다. 온도 상승으로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땅에 소금물이 스며들었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논밭은 새우 양식장으로 변했다. 더이상 농사에 일손이 필요 없게 되자 사람들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낯선 곳에 새로 정착한 이들은 도시 곳곳에 들어선 벽돌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하루 몇십 원 수준의 일당으로 살려면 네다섯 살 아이까지 나서 고사리손으로 벽돌을 깨는 고된 작업을 해야 했다.
반면 새우 양식장을 연 땅주인과 값싼 노동력을 얻은 벽돌 공장 주인은 환경이 변하는 와중에 좋은 기회를 잡았다. 기후변화 속에서 적응을 잘한 사람은 더 부자가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 것이다.
강자와 약자의 적응력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요즘 한국 기업의 경영 환경이 이에 버금가는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대 국회에서 4년간 2500건이었던 발의 법안 수는 17대에 7400건, 18대 1만4000건으로 늘었고, 19대 국회에선 개원 10개월 만에 4300건을 넘어섰다.
경제민주화 등 기업의 환경을 바꾸는 법안이 봇물을 이룬 영향이 컸다. 의원들이 쏟아낸 경제민주화 법안에는 삼성,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을 겨냥한 날 선 조항이 여럿 있다. 화학물질 유출 사고를 낸 기업에 매출액의 5%까지 벌금을 매기거나 지배주주가 범법행위를 저지르면 금융회사 지분을 빼앗는 법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을 살 떨리게 하는 이런 법이 ‘삼성, 현대차 특별법’이 되지 않는 한 모든 경제주체가 영향을 받게 된다. 이 지점에서 적응력의 차이가 승패를 가른다. 변호사만 수백 명을 고용한 대기업보다는 어떤 법이 만들어지는지 파악하지도 못하는 중소기업이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을 공산이 커 보인다.
국회의원은 사회 정의를 실현한다며 거침없이 법을 만들었고, 관료들은 어마어마한 규제의 칼자루를 쥐게 됐다. 그 뒷맛은 개운치 않다. 작은 규제 하나하나에 휘청거릴 중소기업의 사정까지 배려해주는 것이 바로 ‘따뜻한 경제민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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