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제궁도 눈치 보는 거물, ‘프랑스의 삼성’ LVMH의 힘[조은아의 유로노믹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15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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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 최대 스타트업 박람회 ‘비바테크’에 걸린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로고. 파리=AP 뉴시스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요즘 아주 진땀을 빼고 있다네요.”

올해 초 2024 파리 올림픽 조직위가 ‘거물’을 올림픽 파트너로 모시려 애쓰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프랑스를 넘어선 세계적 명품 브랜드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얘기다. 조직위는 LVMH가 파트너를 맡으면 올림픽도 ‘명품 올림픽’이 되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명품 강자의 지위가 확고한 LVMH로선 올림픽에 발 담그기가 거추장스럽지 않았을까. 이런 예상을 깨고 올림픽 1년을 앞둔 지난달 조직위는 “LVMH가 프리미엄 파트너로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정·재계에서 LVMH의 힘이 다시금 입증됐다는 평이 나왔다.

루이뷔통 백이 혼수 필수품으로 꼽히는 한국에서도 LVMH를 모르는 이는 드물다. 최근 걸그룹 블랙핑크 리사와 열애설이 불거진 프레데릭 아르노가 LVMH의 후계자 후보라고 알려지며 LVMH 집안 사람들까지 국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뉴시스


●33년 만에 매출 25배로 급증
프랑스 파리에 기반을 둔 LVMH는 패션·보석·시계·향수·샴페인 등 75개 브랜드를 두고 있다. 1854년에 설립된 패션기업 루이뷔통과 1971년 탄생한 주류기업 모에헤네시가 1987년 합병하며 시작됐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티파니, 크리스챤 디올, 펜디, 지방시, 셀린, 불가리 등이 모두 이 산하에 있다. LVMH는 미디어 기업 레제코-르파리지앵 그룹도 자회사로 소유하고 있다.

거대한 명품 제국을 세운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74)은 LVMH의 매출을 1989년 32억 유로(약 4조7000억 원)에서 지난해 792억 유로(115조7000억 원)로 키웠다. 설립 33년 만에 매출을 25배로 불린 셈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하는 ‘보복 소비’로 매출이 크게 늘었다.

기업 가치가 높아지며 아르노 회장은 지난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제치고 세계 부호 1위 자리에 올랐다. 포브스 ‘억만장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그의 재산 총액은 2110억 달러(약 280조 원)다.

LVMH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아르노 회장이 두 번의 결혼에서 낳은 딸 하나와 아들 넷이다. 첫째 딸 델핀(48)은 크리스챤 디올 CEO를, 둘째 앙투안(45)은 크리스챤 디올 SE의 CEO를, 셋째 알렉상드르(30)는 티파니 부사장을 맡고 있다. 리사와 열애설을 낳은 넷째 프레데리크(28)는 태그호이어 CEO, 막내 장(24)은 루이뷔통 시계 임원이다.

LVMH가 넷째 프레데리크(가운데)와 블랙핑크 멤버들. 프레데리크 아르노 인스타그램
LVMH가 넷째 프레데리크(가운데)와 블랙핑크 멤버들. 프레데리크 아르노 인스타그램


●“국가 안의 국가”
이 명품 거물은 프랑스 정계에서도 큰손이다. 프랑스 일간 르 몽드는 최근 이 기업의 영향력을 다룬 기획 기사에서 “LVMH는 국가 안의 국가”라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의 친분도 소개했다. 르 몽드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 부부는 2021년 6월 21일 재단장을 마친 파리의 사마리탄 백화점 개점식에 참여했는데 현직 프랑스 대통령이 백화점 개점식에 참석한 건 처음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LVMH는 프랑스의 천재”라고 치켜세웠다.

마크롱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 여사의 행사에도 LVMH 일가가 참여해 눈길을 끈다. 브리지트 여사가 후원하는 어린이 병원 후원 행사에 아르노 회장 일가가 함께 하곤 한다. 올해 1월 파리에서 열린 블랙핑크 콘서트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찍은 사진을 아르노 회장의 한 아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LVMH 일가 셋째 며느리이자 데스트리 창업자 제랄딘 기요(왼쪽)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출처 제랄딘 기요 인스타그램


●세금, 올림픽 두고 정부와 ‘밀당’
명품 거물과 정부는 훈훈한 유대 속에 ‘밀당’도 계속한다. 가브리엘 아탈 예산 장관이 부자들을 ‘탈세자’로 표현하자 아르노 회장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클레망 본 교통부 장관은 개인용 제트기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내놔 LVMH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다. 그는 이후 파리의 한 디너 파티에서 아르노 가(家)의 넷째 프레데리크에게 “나는 부유층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며 대립을 피하려 했다. LVMH의 정계 영향력이 워낙 막대해 장관들도 눈치를 보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2024 파리 올림픽 파트너로 LVMH를 영입하는 과정에서도 엘리제궁과 LVMH 일가의 긴장이 팽팽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올해 3월 현지 방송 TF1에서 높은 이익을 내는 기업들을 조롱하자 아르노 회장은 올림픽 조직위와 한 때 대화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신경전 끝에 아르노 회장은 결국 파트너 요청을 받아들이며 “내가 포기해야 했던 유일한 일”이라고 말했다고 르 몽드는 전했다.

아르노 회장은 요즘 K콘텐츠가 뜨면서 프랑스에서 핫한 한국의 기업들에도 관심을 보였다. 올 6월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 최대 스타트업 박람회 ‘비바테크’에 참여한 중소벤처기업부와 오픈이노베이션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LVMH가 한국 기업들과는 어떤 시너지를 낼지 주목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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