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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법원, 전범 처벌 이어간다…101세 최고령 전범에 판결 예정

입력 2022-06-28 14:50업데이트 2022-06-2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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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가 1939년 3월 15일 프라하성으로 들어오고 있다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독일 법원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나치 강제수용소 교도원에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앞서 지난달 독일 검찰은 당시 홀로코스트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101세의 최고령 전범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28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당시 강제수용소의 교도원이었던 요셉 슈에츠는 1942년에서 1945년 사이 베를린 북쪽의 오라니엔부르크에 있는 작센하우젠 수용소에서 3518명의 죄수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현재 브란덴부르크 주에 살고 있는 그는 “절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며 “캠프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범죄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거듭 무죄를 주장했다.

전날 진행된 재판 말미 그는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그가 교도원으로 일하며 범죄 사실을 알고도 대학살에 가담했다고 보고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당시 21세였던 그는 소련 포로들이 총살되고, 독가스를 사용해 살해되는 과정을 방조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작센하우젠 수용소는 독일 베를린 북쪽으로 35㎞가량 떨어진 마을 오라니엔부르크에 위치해있다. 1936년 처음 세워진 뒤 정치범을 주로 수용하는 장소로 활용됐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함께 악명 높기로 유명했으며 1945년까지 유대인뿐만 아니라 전쟁 반대론자, 나치에 반대하는 정치범, 동성애자들도 대거 수용됐다.

역사학자들은 1936년부터 1945년까지 무려 20만 명 이상이 감금됐으며, 이 가운데 10만 명 이상이 질병, 굶주림, 강제노동, 생체실험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보고 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여러 가지 모순되는 진술을 하며, 머리가 혼란스럽다고 불평했다. 모순되는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그는 2차 세계 대전 대부분의 기간 동안 독일에서 농업 노동자로 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그의 이름, 생년월일, 출생지가 적힌 여러 문서들과 다르다.

전쟁이 끝난 후 슈에츠는 독일로 돌아가 농부와 자물쇠 수리공으로 일하기 전, 러시아에 있는 수용소로 이송됐다.

슈에츠가 유죄를 판결받더라도,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수감 가능성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그의 변호사 스테판 워터캠프는 AFP통신에 “슈에츠의 유죄가 인정될 경우,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 독일 검찰은 생존해있는 나치 가해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난 2011년엔 당시 경비원이었던 존 데미안주크가 히틀러의 살인 행위를 도왔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뒤늦게 재판에 회부된 이들 중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회계사인 오스카 그로닝과 아우슈비츠의 친위대 출신 라인홀드 해닝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94세의 나이에 대학살에 가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투옥되기 전 사망했다.

전직 친위대 간수였던 브루노 데이 역시 재작년 93세의 나이로 유죄판결을 받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독일 북부 도시 이체호에서는 96세의 전직 비서가 살인 공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극적으로 도망쳤지만, 몇 시간 후 붙잡혔다.

일각에선 오랜 시간이 지난 홀로코스트 관련자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이 타당한 지 의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기욤 모랄리스 연구교수는 관련 재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AFP통신에 “유럽 곳곳에서 신(新) 파시스트 극우세력이 강화되고 있는 시기에 권위주의적 관점에서 개인의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재확인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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