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서 환영 받는 발리예바…러, 잇단 도핑 파문에도 ‘타격감 0’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1일 15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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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은 중국에서 열렸지만 러시아로 시작해 러시아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러시아는 올림픽 개막 전부터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으로 연일 전 세계 주요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어 개막 사흘차에는 카밀라 발리예바(16)의 도핑 사건이 터져 폐막 때까지 올림픽 이슈를 점령했다.

역설적인 사실은 러시아는 이번 올림픽 참가가 금지된 국가라는 점이다. 2016년 러시아 반도핑기구(RUSADA) 산하 모스크바 반도핑 연구소 그리고리 미하일로비치 롯첸코프 소장은 2014 소치 올림픽 당시 러시아가 국가 차원의 도핑을 저질렀다고 폭로했다. 이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러시아의 2018 평창 올림픽 출전을 금지해 선수들은 러시아출신올림픽선수(OAR) 라는 이름으로 대회를 치렀다. 이후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2019년 12월 러시아에 올림픽을 포함한 국제대회에 출전을 4년간 금지하는 공식 처벌을 내렸다. 러시아는 올림픽 등 국제대회를 주최할 수도 없고 올림픽에서는 러시아의 국기, 국가 사용이 금지됐다.

명목상 처벌인 ‘러시아’ 국가명 사용 금지도 2022년 12월이면 끝나

하지만 이는 러시아라는 국가명으로 올림픽 참가를 금지한 처분이었을 뿐 IOC는 무고한 선수들까지 올림픽 참가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 이들에게 개인자격 올림픽 출전을 허용했다. 러시아 선수들은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소속으로 실질적으로는 이전 대회와 별반 차이 없이 올림픽에 자유롭게 참가 중이다. 어느덧 올림픽에서 ROC는 사실상 러시아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20일 폐회식에서는 이번 대회 마지막 메달이 걸렸던 크로스컨트리 50km 남자 경기 시상식은 러시아가 올림픽 참가 금지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 몇 안되는 순간이었다. 금메달의 주인인 ROC 소속 알렌산드르 볼슈노프는 포디엄에 올라 올림픽에서 사용이 금지된 러시아 국가대신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들었다.

러시아는 국가주도 도핑 사실이 적발된 이후에도 샘플을 조작하고 WADA의 도핑기록 데이터 접근을 차단하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소치 올림픽 동안 도핑사건이 발생한 것은 인정했지만 도핑이 국가주도로 이뤄졌다는 것은 부인해왔다.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올림픽 출전 금지 조치를 둘러싼 RUSADA-WADA간 분쟁에 대해 2020년 12월 최종 판결을 내고 러시아의 출전 금지 기간을 2년(2022년 12월까지)으로 정했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4 프랑스 파리올림픽부터는 ‘러시아’라는 국가명을 되찾고 다시 경기에 나설 수 있게 된다.
국가주도 도핑 폭로에도 타격감 없는 러시아 도핑

이번 올림픽 기간 도핑 파문으로 세계를 경악하게 한 발리예바는 러시아에 귀국하는 공항에서 고국의 팬들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도핑규칙에 대해 러시아가 얼마나 무감각한지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애당초 발리예바 사태가 벌어진 근본적 원인은 국제적 반도핑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이 크다. CAS가 17일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발리예바는 지난해 12월 25일 자국에서 열린 러시아선수권대회에서 도핑검사를 받았지만 해당 도핑샘플을 검사한 연구소는 그로부터 45일이 지나 올림픽 도중인 7일 검사 결과를 발표해 혼란을 키웠다. 해당 검사기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근무 연구원 수가 줄어 검사결과가 늦어졌다고 CAS 청문회에 입장을 밝혔다.

발리예바 측 변호사는 CAS 청문회에서 “문제가 된 도핑 검사 올림픽 경기와 상관없는 시기에 수집된 샘플이며 CAS의 긴급 청문회 일정은 선수에게 적법절차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또 도핑 검사 결과 보고가 도핑 샘플 수집 44일이나 지난 뒤에야 나왔고 비정상적인 지연으로 오염 경로 증명에 충분한 증거를 수집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점을 어필하며 올림픽 도중 발리예바의 선수의 자격을 일시박탈하는 것이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반됨을 강조했다.

발리예바의 이번 올림픽 출전자격 여부를 최종 결정한 CAS는 “올림픽 경기를 앞두고 출전선수의 도핑 위반 여부가 제때에 검증됐어야 했다”며 “반도핑 기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에 대한 피해를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가 입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고 발리예바의 출전을 허용했다. 결국 발리예바는 도핑 양성반응이 오염에 의한 것이라는 구두 주장을 제외하고는 구체적 증거자료를 하나도 제시하지 않고서도 올림픽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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