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후 ‘내전’ 소문까지…대규모 폭동 대비 사설 대피소도 등장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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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 인근의 H스트리트 앞. 대형 건물의 상점 입구와 유리창들이 두꺼운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5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 씨 사망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항의 시위 이후 5개월여 만에 다시 등장한 을씨년스러운 광경이었다. 건물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은 “플로이드 사망 때 붙였던 게 남아있는 게 아니라 대선을 앞두고 다시 붙인 것”이라며 “대선 후 시위가 격화될 가능성에 대한 대비”라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대선을 앞두고 긴장감이 팽팽한 시점에 폭력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경고의 목소리가 높다”며 “승자가 명확히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표가 지연될 경우 더욱 그렇다”고 전망했다.

과열된 선거 분위기 속에서 이미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텍사스주에서는 30일 총기로 무장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민주당 유세버스를 포위한 채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텍사스주 지역방송인 KXAN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가 탄 6~7대의 차량이 고속도로 위에서 민주당 유세 버스를 에워싸고 이를 멈춰 세우려 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원이 탑승한 차량을 고의로 밀쳐 내거나 욕설, 협박이 이어졌다. 이번 사건으로 민주당은 오스틴의 인근 도시에서 열기로 한 유세를 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1일 민주당 유세버스를 에워싼 자신의 지지차량 영상을 트위터에 올리고 “텍사스를 사랑한다!(I LOVE TEXAS!)”라고 적어 폭력을 두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31일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대선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최루탄을 쏘고 여러 명을 연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당시 폭력 시위의 양상이 없었음에도 경찰이 지나치게 강경대응을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미디어에는 대선 직후 소요가 확대되면서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까지 급속히 돌고 있다. 채드 울프 국토안보부 장관 대행은 지난달 대선 관련 폭동 가능성에 “폭력적인 극단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공격은 전례 없이 치명적”이라며 “이들은 폭력과 죽음, 파괴를 통해 미국 내의 이데올로기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분석한 보고서를 내놨다.

반면 대표적 우파 논객인 글렌 벡은 “좌파들이 대선일에 소요를 일으키기 위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는 무장한 우파 단체 멤버들이 선거일 당일에 우편투표 용지 수거함에 출몰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극좌파 단체들도 맞대응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 내 정치적 폭력을 연구하는 비정부기구 ‘ACLED프로젝트’는 “무장한 민병대와 다른 비정부 무장단체들이 미국 유권자의 안전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며 조지아주, 미시간주, 펜실베이니아주 등 경합주 유권자들에게 경고했다.

NBC 방송은 29일 이민세관단속국(ICE)과 세관국경보호국(CBP) 요원들이 대선 당일 워싱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요사태에 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주방위군국은 대선 후 소요에 대응할 새로운 부서를 설치했다.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웨스트버지니아주와 콜로라도주 등지에는 대규모 폭동 사태에 대비한 사설 대피소가 등장했다. 은퇴한 공군 출신 민간인이 만든 이 대피소에 수십 명이 1000달러의 비용을 내고 사용 신청을 했다.

미국에서는 최근 총기 구매 수요가 급증하며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올해 3~9월 총기 판매량은1510만 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1% 늘어났다. 피츠버그의 총기상 운영자인 네이트 거하임(33) 씨는 “모두가 (총기를) 사들이는 ‘퍼펙트 스톰’ 같은 상황”이라며 “(대선 혼란에)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회 불안정까지 합쳐진 결과”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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