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 ‘인티파다’ 독려… 美는 해병대 출격까지 시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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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수도 인정 후폭풍]화약고 된 예루살렘 르포

8일(현지 시간)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3대 종교의 성지인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선언’으로 대혼란에 빠져 있었다.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인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긴장감이 도시에 가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경악한 팔레스타인 시위대들은 올드시티(구시가지) 다마스쿠스 문 일대에 모여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것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 중에는 여성, 어린이, 청소년들도 섞여 있었다. 일부 시위대는 “압바스는 배신자다”, “압바스는 미국의 스파이다” 같은 구호도 외쳤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신속하고 강경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실망과 분노였다.

유대인들도 복잡한 감정을 쏟아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해 준 게 반갑지만,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유대인인 택시 운전사 로넨 인지 씨는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언한 건 환영할 만하지만 그가 정상이 아닌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들은 일제히 민중 봉기와 무장 투쟁을 독려하고 나섰다.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하마스의 이스마일 하니야는 7일 연설에서 “미국이 지지하는 시오니스트(유대 민족주의자) 정책은 우리가 새로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에 불을 붙이지 않는 한 맞설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니야의 연설 후 곧이어 다수의 로켓포가 가자지구에서 발사됐다”며 “이 중 한 발이 이스라엘 영토에 떨어져 육군 탱크와 공군 비행기가 가자지구 내 ‘테러 초소 두 곳’을 목표로 대응했다”고 밝혔다.

반이스라엘 무장단체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이슬람 지하드(PIJ)’의 지도자 나페즈 아잠과 아흐마드 알바치는 “새로운 무장 투쟁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과의 모든 안보 협력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레바논 남부를 거점으로 활동하며 이스라엘과 지속적으로 충돌해 온 이슬람교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도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헤즈볼라는 “미국은 나누어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함으로써 모든 협상의 길을 차단해 버렸다”며 “이는 팔레스타인의 권리에 반하는 기만적이고 악의적인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헤즈볼라는 최근 수년 사이 이란의 도움으로 세력이 빠르게 성장해 이스라엘과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가 동시에 부담을 느껴온 단체다. 일각에선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모종의 합의를 한 뒤 헤즈볼라를 공격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헤즈볼라가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1995년 미국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도 대사관의 안전 등을 이유로 실행하지 않았던 미국도 긴장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표 직후 전 세계 20개 이상의 미대사관이 격렬한 반대 시위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롭 매닝 국방부 대변인은 “미 해병대는 소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곳의 대사관과 영사관 등 재외공관을 보호할 준비가 돼 있다”며 해병대 출격 가능성도 시사했다.

수십 년 동안 유지되어 오던 중동 정책이 한순간에 뒤바뀐 미국 내부도 혼란에 휩싸였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7일 “수십 년 된 미국의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아랍과 이슬람 세계 전체에 걸친 긴장을 악화시킨다”고 우려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그리고 대통령의 억만장자 친구인 토머스 배럭까지 나서서 반대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몇 달 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기로 사실상 결심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틸러슨 장관은 공식 발표 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따른 것”이라고 옹호했지만 그전까지는 제2의 벵가지 사태(2012년 리비아 미국영사관 테러로 4명이 사망한 사건)가 벌어질 수 있다며 강력히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 이후 팔레스타인 반발의 강도가 워낙 커 당분간은 긴장 고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달 중하순에 예정되어 있었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압바스 수반 간 회담이 취소 위기에 처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집권당인 파타의 고위 인사인 지브릴 라주브는 “펜스 부통령이 팔레스타인에 발을 들여선 안 된다”고 밝혔다.

예루살렘=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이세형 기자 / 파리=동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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