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24>“특파원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7일 15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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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월터스
바바라 월터스

“When you‘re interviewing someone, you’re in control. When you‘re being interviewed, you think you’re in control, but you‘re not.”(당신이 누군가를 인터뷰하고 있을 때 당신이 그 상황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당신을 인터뷰할 때 당신은 자신이 상황을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미국의 저명 저널리스트이자 앵커우먼이었던 바바라 월터스가 한 말입니다. ’인터뷰의 여왕‘으로 불릴 정도로 인터뷰 기술이 탁월한 그는 인터뷰할 때 상황을 주도해야지 끌려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TV에서 월터스의 인터뷰를 많이 봤는데 그다지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대상의 개인사를 이끌어내 감정 과잉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아서죠. 미국 언론계에서는 ’월터스는 꼭 (인터뷰 대상의) 눈물을 보고야 만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특파원 업무 중 중요한 미션 중 하나는 현지 유명인을 인터뷰하는 겁니다. 워싱턴에선 주로 정관계나 학계 인사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특파원이 인터뷰 요청을 하면 대부분 성사될 것 같지만 사실 성사율은 20~30% 수준입니다. 인터뷰 요청 과정도 워낙 복잡해서 해당 인사의 사무실 전화번호 알아내고, 비서에게 먼저 해당 인사가 요즘 자리에 있는지, 혹시 출장가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인터뷰 요청 e메일을 보내고, 비서에게 받았는지 확인하고, 답장 기다리고, 답장이 안 오면 비서에게 왜 답장이 없는지 확인하는 등 정말 인내심을 요하는 일입니다. 공들여 신청한 인터뷰가 끝내 거절당했을 때의 허탈함이란….

저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인사들이야 워낙 많지만 거절할 때도 예의를 갖춰서 거절하는 사람은 좋은 인상을 갖게 됩니다. ’역사의 종말‘을 쓴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 교수나 국내에서도 유명한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먼드 UCLA대 교수가 그랬습니다. 인터뷰 요청에 딱지를 놨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인터뷰를 하겠다는 건지, 안하겠다는 건지 답장조차 없는 무성의한 인사들도 많았으니까요.

이성규 오하이오대 교수
이성규 오하이오대 교수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 대상은 그다지 유명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니었죠. 다름아닌 오하이오대 교수였습니다. 그는 미국 과학공학 명예의 전당(ESHF)에 회원으로 선정되는 경사로운 일이 있어 인터뷰를 하게 됐죠. 이 교수는 청각장애인입니다. 워싱턴에서 전화로 인터뷰하면 간단할 일이겠지만 청각장애가 있어 전화로는 대화할 수 없었습니다. 긴 e메일이 수차례 오가야 하기 때문에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습니다. ’서로 말로 하면 쉬울 텐데…‘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또 글이 오가다보니 인터뷰 대상의 표정이나 감정을 읽을 수 없어 인터뷰 기사 내용이 무미건조해질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교수의 답변을 천천히 읽으며 기사를 쓰다보니 말로는 전달할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답변 스타일을 보며 ’이 교수는 이런 성격이겠구나‘하고 상상할 수 있었죠. 그가 쌓은 어려운 과학적 업적도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한번의 수고였지만 이 교수는 평생 이런 수고를 하며 살아왔을 생각을 하니 존경심이 느껴졌습니다.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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