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 소속 정당 물어본뒤 총격… “反트럼프 증오 계속 터질까 걱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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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공화의원 피격 현장르포]부랑자 생활 총격범, 샌더스 지지… 페북에 “반역자 트럼프 끝장내야”
흑백갈등 극복 상징 공원 사전답사

이승헌 특파원
이승헌 특파원
“어떻게 워싱턴이 바로 코앞에 있는 우리 동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14일(현지 시간) 오전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유진심프슨 스타디움 공원에서 만난 주민 메리 조에터 씨는 울먹거리며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서는 전날 동료 의원들과 야구 연습을 하던 스티브 스컬리스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 등 5명이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는 “내 아들이 유소년 야구단 연습을 했던 곳에서 정치 증오 범죄가 벌어진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폭스뉴스는 “공화당 의원을 넘어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정권을 암살하려 했던, 정치적 동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테러”라고 규정했다.

사건 현장에서 경찰과의 총격전으로 사망한 범인 제임스 호지킨슨은 오래전부터 반(反)트럼프 성향을 보여 왔다. 지난해 대선에선 사회주의자를 표방한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자원봉사자로 일했고 페이스북에 “트럼프는 반역자. 트럼프가 우리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트럼프와 일당들을 끝장내야 한다”는 등의 글을 올렸다. 트럼프에 대한 탄핵소추를 청원하는 사이트를 소개하는 글도 올렸다.

미 언론이 전하는 호지킨슨의 범행 전 행적을 보면 트럼프와 가까운 공화당 인사들을 겨냥한 공격을 오랫동안 계획했던 것으로 보여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올해 초 고향인 일리노이주에서 해오던 주택수리업체를 접고 차량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부랑자로 지내 온 호지킨슨은 범행 현장 인근에 있는 YMCA를 한동안 오가며 동네 상황을 탐문했다. 이날 범행 현장에선 야구 연습을 하던 의원들이 공화당 소속인지 민주당 소속인지를 확인한 뒤 총격을 가했다고 한다. 미 언론은 호지킨슨의 범행을 계기로 트럼프 취임 후 미국 사회에 축적되어 온 극단적 진보 세력의 불만과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 계속 돌출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알렉산드리아 유진심프슨 스타디움 공원은 교내 흑백 갈등을 극복한 노력을 그린 2000년 영화 ‘리멤버 타이탄’의 실제 배경이어서 미국인들이 느끼는 충격은 더 크다. 공원 바로 옆에는 영화 배경인 TC 윌리엄스고교가 있고, 공원엔 미국의 사회적 갈등과 그 치유를 다룬 영화의 의미를 기려 ‘HOME OF TITANS’(타이탄의 홈구장)라는 대형 문구가 걸려 있다.

워싱턴 백악관에서 차로 불과 2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서 평일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만큼 미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총기규제 이슈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집권 공화당은 헌법을 내세워 총기 소유 자유를, 민주당은 총기 규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날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물류운송업체 UPS 창고에서도 총격 사건이 발생해 범인을 포함해 총 4명이 사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건 직후 성명을 내고 “우리는 때로 의견이 다르지만 모두 미국을 사랑한다”며 단합을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5일자 사설에서 “공화당 의원들의 야구 연습장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은 민주당을 포함한 미국 민주주의 전체에 대한 공격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던졌다”고 진단했다.

알렉산드리아=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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