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공항 억류… 본국 강제송환… 무슬림들 “우리가 범죄자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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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反이민 정책 대혼란]‘7개국 국민 90일 입국금지’ 파문


 
미국 스탠퍼드대 인류학 박사과정에 다니는 니스린 오메르 씨(39)는 27일 졸지에 수갑을 찼다. 미국에서 24년간 거주한 수단 출신 영주권자인 그는 연구차 수단을 방문했다가 이날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슬람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90일 동안 일시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직후여서 오메르 씨는 약 다섯 시간 동안 억류된 채 수단을 방문한 이유와 정치 성향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모욕적이었다”라고 말한 오메르 씨는 뒤늦게 입국이 허가돼 풀려났지만 “나보다 더 형편없는 취급을 받고 본국으로 송환되는 사람도 있다”라고 한탄했다.

 트럼프가 떨어뜨린 반(反)이민 행정명령 ‘폭탄’에 한국의 설 연휴 기간 미국 주요 국제공항은 졸지에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한 외국인들의 사연으로 가득 찼다. 이라크에서 미군 통역사로 10여 년간 일하고 특별 이민 비자를 받아 27일 존 F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하미드 칼리드 다르위시 씨는 19시간 억류된 끝에 시민자유연맹(ACLU)의 백악관 상대 소송 덕에 다음 날 풀려났다. “내가 이 나라에 무슨 일을 했길래 수갑을 채우는가”라고 항변한 다르위시 씨는 “이 손으로 수많은 미군과 일해 왔다”라며 “나를 범법자 취급해 놀랐다”라고 토로했다.

같은 공항에서 28일 억류된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대학원학생회 회장인 이란인 바히데 라세크 씨는 자발적으로 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서명을 거부한 끝에 우크라이나행 비행기에 강제 탑승됐다가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석방됐다. 학생회 측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라며 “이번 행정명령은 차별적이며 우리 친구와 동료들의 권리를 뺏어 간다”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규탄 시위는 외국인 억류가 이뤄진 국제공항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대표적인 지한파 인사이자 버지니아 주가 지역구인 민주당 제럴드 코널리 하원의원은 29일 워싱턴 관문 덜레스 국제공항 로비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반헌법적인 이번 조치를 규탄하며 즉각 이민자들을 수용해야 한다”라고 트럼프를 비난했다. 시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 기조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패러디해 “Make America Kind Again(미국을 다시 친절하게)”를 외쳤고 일부는 “예수님도 처음에는 난민이었다”, “내가 무슬림이다”라는 피켓도 들었다. 반트럼프 성향이 강한 뉴욕, 샌프란시스코는 물론 텍사스 주 댈러스,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등의 국제공항에도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모여들었다.

미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행정명령 해석은 전국적 혼란을 증폭시켰다. 국토안보부 대변인은 28일 “미 영주권자도 (이민 제한 대상 7개국 시민권을 동시에 보유한 경우) 입국 제한 대상에 포함된다”라고 밝혔다. 백악관은 같은 날 미 영주권자의 경우 추가 심사를 받을 것이라고 다소 다른 해석을 내놨고, 존 켈리 국토안보장관은 29일에야 “합법적 영주권자들의 입국은 국익에 도움이 된다”라며 기존 입장 번복을 확인했다. 라인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29일 오전 CBS방송에 출연해 “어제 미국에 입국한 외국인은 총 32만5000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구금된 사람은 109명 정도고 그마저도 대부분 추후 풀려났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트럼프#반이민#무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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