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때문에 ‘언론사’된 페이스북…저커버그는 “사실상 편집국장”?

  • 동아닷컴
  • 입력 2016년 10월 23일 16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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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의 일부 발언이 ‘혐오 발언’에 해당돼 걸러내야 한다는 내부 의견에 대해 특정 후보를 검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방침을 내렸다. 사실상의 편집권 행사였다. 페이스북은 19일엔 대변인을 통해 “(트럼프 관련 게시물은) 다음 미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화의 중요한 일부분이 됐다”며 트럼프 발언을 검열하지 않을 것을 그 이유와 함께 공개적으로 밝혔다. 21일 페이스북 고위관계자는 “특정 아이템이 뉴스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등록을 허용하겠다”고 다시 한 번 페이스북의 공식 편집 기준을 분명히 했다.

‘페이스북’과 ‘마크 저커버그’라는 고유명사를 지우고 읽는다면 어떨까. 무엇이 뉴스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겠다는 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회사의 정책 방침이라기보다는 한 언론사의 대선 보도 가이드라인에 가깝다. 트럼프의 막말을 뉴스로 실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은 주류 언론사들도 모두 한 번씩 고민해 본 문제이기도하다.

페이스북은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대선이 열린 올해 페이스북은 정치 관련 광고로만 3억 달러(약 3400억 원)를 쓸어 모았고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전체 미국인의 절반에 가까운 44%가 페이스북을 통해 뉴스를 본다. 그럼에도 페이스북은 자신이 열린 토론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뿐 일반 언론사와 같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트럼프로 인해 촉발된 ‘검열 논란’은 사실상 페이스북의 언론사로서 커밍아웃을 유도한 모양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2일 “저커버그가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뉴스 회사의 편집국장이 됐다”고 전하기까지 했다. 사안의 ‘뉴스 가치’를 판단하는 “매우 주관적인” 행동을 하겠다는 선언은 사실상 페이스북이 기존 언론사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자기 고백이나 다름없다는 해석이다. 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정보윤리를 가르치는 안나 로렌 호프먼 교수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이) 사실상 처음으로 자신이 제공하는 플랫폼의 정치적 측면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저커버그는 트럼프 발언을 검열하지 않겠다고 밝혔을 뿐 아니라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페이스북 이사 피터 틸의 퇴진도 '다양성 존중' 논리를 내세우며 반대했다. 하지만 ‘트럼프 막말’이라는 날갯짓이 불러온 언론사 ‘강제 커밍아웃’이라는 나비효과에 시달려야 하는 저커버그는 그 누구보다 트럼프가 더 야속할지 모른다. 애초에 막말을 않는 상식적인 후보였다면 '뉴스가치 판단'을 공개적으로 운운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한기재 국제부 기자 reco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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